삼성전자가 2030년 비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 달성을 위해 반도체 생태계를 아우를 수 있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책에는 투자는 물론 반도체 산업구조 재편, 중소 팹리스 업체들과 상생방안 등이 포함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삼성전자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경쟁력을 갖춘 만큼 이를 활용한 강소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정부가 비메모리 반도체를 육성하려는 이유는 메모리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구조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한국 경제 전체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가 호황이었던 지난해 수출이 사상 최고였다면 올해는 메모리 시황 악화로 수출은 물론 성장률까지 위협받고 있다.
정부도 그간 수차례 한국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기업인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을 만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향해 “요즘 반도체 경기가 안 좋다는데 어떠냐”고 물었고 이 부회장은 “좋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자 이 부회장은 “집중과 선택의 문제”라며 “기업이 성장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기업인 간담회 이후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반도체 시장 상황을 꼼꼼히 챙겨볼 것을 지시했다. 특히 정부는 최근 들어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윤 수석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업계 관계자 등 다양한 전문가를 포함해 만났다”며 “생태계 강화, 반도체 대학 학과 등 인력 양성, 수요 기업과 반도체 기업과의 상생협력 등에 중점을 둬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를 크게 웃돈다는 점을 감안 하면 잘만 육성하면 향후 수 십년 간 한국을 먹여 살릴 먹거리가 될 수 있는데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황 변동성이 큰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는 변동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4,837억 달러 규모이며, 이중 비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3,212억달러로 66%를 차지한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1·2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 향후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비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 수준이며, SK하이닉스는 1%에 불과하다. 업계도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이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라는 목표를 세우고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도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어 지금이야말로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에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쳐 속도를 낼 때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산학의 조화가 필요한 분야”라면서 “그간 업계는 수익성이 높은 메모리 분야에 집중하느라 비메모리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고, 학계에서는 우수한 인력이 공급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정부와 산업계가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에 정부와 삼성전자가 발표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에 △시스템 반도체 육성 △파운드리 1등과 격차 축소 및 파운드리 국내 팹리스에 개방 △산학 협력 통한 국내 인재 양성 등이 담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힘을 싣고 있는 파운드리 관련해서서는 국내 팹리스 업체에도 문을 열겠다는 뜻을 밝힐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그간 파운드리를 텔레칩스 등 국내 일부 팹리스 업체에만 제한적으로 개방했으며, 국내 2위인 DB하이텍만 국내 펩리스 업체의 물량을 받아 제작해왔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그간 국내 펩리스 업체들은 규모가 작아 상대하지 않았다”면서도
“이번에는 생태계 강화 차원에서 중소 펩리스 업체와의 협력 방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관련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과 관련해 국내 최대 업체인 삼성전자의 투자 흐름 등에 맞춰 전반적인 생태계를 육성하는 전략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운드리, 팹리스, 디자인하우스 등 다양한 비메모리 분야에서 인력을 고급화하고, 기업 간에 상생협력을 높이는 방안이 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업계에서 가장 큰 업체가 삼성전자인 만큼 삼성은 삼성 대로의 계획을 갖고 있고, 산업부는 삼성전자와 생태계를 육성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고병기·윤홍우·강광우 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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