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역사를 자랑하는 갤러리현대가 미국 뉴욕에 진출한다.
갤러리현대는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남쪽에 위치한 트라이베카 지역에 100평 규모의 예약제 전시장인 ‘갤러리현대 뉴욕 쇼룸’을 개관한다. 첫 전시는 재일 한국인 작가 곽덕준의 개인전이다. 전시장은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 하나인 ‘프리즈(Frieze) 뉴욕’ 기간에 맞춰 다음 달 1~4일 개방할 예정이다.
옛 인쇄공장 건물을 개조해 층고 3m의 전시장을 확보한 갤러리현대는 ‘뉴욕 쇼룸’을 공공 공간이 아닌 비공개, 예약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관람객과 컬렉터를 위한 일반적인 갤러리가 아니라 미술관 관계자들과 큐레이터·평론가·갤러리스트·딜러 등 미술계 전문가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국 작가들의 맥락과 저력 등을 학술적·미학적으로 소개해 한국미술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해외진출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1990년대 뉴욕대(NYU)와 프랫대학원(Pratt Art Institute)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해 현지 사정에 밝은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최근 4~5년 동안 한국미술에 대한 해외 미술계의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 방문도 늘었지만 정작 작가와 작품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는 부족하다는 게 계기가 됐다”면서 “당장의 상업적 목표를 겨냥하지 않고 국내 인지도에 비해 해외에서의 소개가 부족한 곽덕준, 한묵 등의 거장부터 차근차근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 대표는 “해외에서 관심을 끈 ‘단색화’도 있지만 퍼포먼스, 설치, 정물화 등 해외에 소개해야 할 한국 현대미술의 활동 양상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을 전후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단색화’는 미술시장에서의 성과에 비해 학술적 연구·담론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갤러리현대 측은 시장에서의 성과가 열매라면 학문적·비평적 연구와 미술관에서의 소개 등은 뿌리와 줄기라고 판단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며 기반을 다지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곽덕준 전시 기간에는 조앤기 미국 미시건대 미술사학과 교수 등의 강연이 열린다.
갤러리현대의 뉴욕 진출 소식은 글로벌 미술전문 매체 아트포럼(Art Forum)과 아트뉴스(Art News) 등도 주목해 보도했다. 이는 10여 년 전 국내 화랑들의 ‘뉴욕 러시’와 비교된다. 앞서 아라리오갤러리가 2007년에, 이듬해 가나아트갤러리가 뉴욕의 첼시에 전시장을 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대미술 시장의 위축과 높은 임대료 부담 등을 이유로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철수했다. 뉴욕의 한국계 화랑으로는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의 장녀 김태희 씨가 이끄는 티나킴갤러리가 가장 활발하다. 비영리 미술기관으로 두산그룹 연강문화재단의 ‘두산 레지던시 뉴욕’이 지난 2009년에 첼시에 개관해 미술가들에게 작업공간(6개월)과 현지 전시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두산 레지던시 뉴욕은 오는 6월 10주년을 맞는다.
갤러리현대는 창업주 박명자 회장이 지난 1970년 4월 종로구 인사동에 ‘현대화랑’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이중섭·박수근과 백남준 등의 근대 거장을 꾸준히 소개했다. 1975년에 지금의 삼청로로 자리를 옮긴 현대화랑은 김창열·윤형근·박서보·정상화·이우환 등의 추상미술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이후 ‘단색화’ 열풍의 초석을 다졌다. 현대화랑은 1987년에 국내 화랑 최초로 해외아트페어인 시카고아트페어에 참가하며 ‘국제화‘를 선언했고 화랑 이름도 갤러리현대로 바꿨다. 2007년에 베이징에 분관을 열었던 적 있으나 2008년에 철수했고 이후 해외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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