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이주자 부실관리는 해외송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건강보험 혜택을 위해 해외이주자 신고를 고의로 회피해도 자금출처 증빙이나 국세청 통보 없이 상당 규모까지는 해외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주권 취득 등으로 해외로 이주하는 국민이 한국 재산을 이민국으로 반출하기 위해서는 해외이주자 신고를 거쳐야 하지만 이를 피해 얼마든지 편법으로 재산 해외 반출이 가능한 것이다. 현 해외송금 규정에 따르면 해외유학생과 해외체재자 송금 등을 통해 국세청 통보 없이 연간 1인당 10만달러, 4인 가족 기준 40만달러(약 4억6,000만원)까지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다. 참고로 일반인이 국세청 통보 과정을 피하면서 해외에 송금 가능한 금액은 연간 1만달러(건당 3,000달러)다.
해외이주자 신고를 생략하고 해외로 재산 반출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은 해외유학생 송금이다. 해외이주자들은 보통 전 가족이 해외로 이주할 때 6개월에서 1년가량 현지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외화만 지닌 채 이민국에 들어간다. 인천공항에서 1인당 1만달러(여행자수표 포함) 이상 보유할 경우 자진신고하고 출국한 뒤 이민국에서도 자진신고를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주권 등을 취득하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후 한국에 입국할 때 현지 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와 배우자의 재학증명서가 있다면 한국에서 해외유학생 송금으로 한도 없이 송금할 수 있다. 국세청 통보를 피하기 위해 1인당 10만달러(약 1억1,500만원)를 본인을 제외한 3인 개개인의 명의로 송금한다면 1년에 30만달러(약 3억4,500만원)까지 송금이 가능한 셈이다. 여기에 가족 중 한 사람이 해외 현지에서 직장을 구한 경우 해외체재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만 은행에 제출하면 1인당 10만달러까지 국세청 통보 없이 해외송금이 가능하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4인 가족 기준 1년에 40만달러까지 해외송금을 한다면 5년에 200만달러(약 23억원)도 가능해진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유학생 경비 명목의 해외송금 가능 금액은 법과 시행령·규칙 등에서 한도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기획재정부의 외국환거래 규정에 따라 각 은행이 1인당 10만달러 이상을 송금할 경우 국세청에 통보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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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해외이주 예정 송금을 활용할 경우 국세청 통보 없이 10만달러까지 추가로 해외송금할 수 있는 방법도 열려 있다. 관할 세무서장이 발행한 자금출처 확인서를 제출하면 10만달러 초과도 가능하다. 자금출처 확인서는 세무서가 양도세 등 세금 미납 여부만 확인하기 때문에 세금만 성실히 납부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외이주 예정 송금의 가장 큰 허점은 해외송금 이후 1년 이내에 영주권 취득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만 은행에 제출하면 해외이주자 신고를 얼마든지 건너뛸 수 있다는 것이다. 영주권 카드, 또는 영주권 신청 중인 서류만으로 해외이주 예정자 증명이 가능하고 해외이주 신고서를 피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주 예정 송금으로 자금을 반출한 뒤 1년 이내에 영주권 등의 복사본을 해당 은행에 제출하거나 또는 해외이주 확인서를 제출하면 된다”면서 “해외이주 신고 없이도 얼마든지 해외로 재산 반출이 가능한 구조”라고 인정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은행을 통한 해외 재산 반출이 이뤄지지만 정부는 해외체재자와 해외이주자 송금액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내부 전산망에서는 분류가 가능하지만 한국은행은 이를 따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해외체재자 송금 등은 이전소득수지 등으로 통계에 잡히지만 세부 내역은 별도로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은행의 통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010년부터 권고하는 국제수지 통계 매뉴얼을 따르고 있고 이 매뉴얼에는 해외체재자 송금 등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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