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초하루. 맑다. 새벽에 아우 여필과 조카 봉, 아들 회가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어머니를 떠나 남쪽에서 두 번이나 설을 쇠니 간절한 회포를 누를 길 없다. 군관 이경신이 병마사의 편지와 설 선물, 장전(長箭)과 편전(片箭) 등 여러 물건을 바치러 갖고 왔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렇게 시작된다. ‘난중일기’를 포함한 이순신의 글을 모은 사후 문집인 ‘이충무공전서’가 장장 3년 6개월의 작업을 거쳐 현대어로 재번역될 예정이다.
서울여해재단은 충무공 이순신 문집인 ‘이충무공전서’의 철저한 문헌고증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을 만드는 정본화(正本化) 사업을 추진한다고 1일 밝혔다. 서울여해재단은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이순신 리더십 전파를 위해 지난 2017년에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이번 재번역 사업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좌장을 맡았다. ‘난중일기’를 완역한 노 소장은 여러 판본을 비교해 오자와 오역 등 잘못된 점을 바로잡은 ‘교감(校勘) 번역’으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한국역사연구원장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문헌고증을 비롯한 사업 전반의 신뢰도를 살핀다. 한문고전을 전공한 전·현직 교수들과 고전 번역 전문가들도 참여한다. 이번 사업은 이달중 착수해 오는 2022년 10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이충무공전서’는 1759년에 정조의 왕명으로 작성된 충무공의 사후 문집이다. 유득공이 검서관으로 간행을 감독·지휘했고 예문관에서 편찬했다. 총 14권 8책으로 정리했는데 국가 주도의 편찬사업답게 책 첫머리는 정조가 신하와 백성들에게 내리는 말인 윤음(綸音)으로 시작한다. 도판 설명에 해당하는 도설(圖說)에 ‘통제영귀선’과 ‘전라좌수영귀선(全羅左水營龜船)’이라는 이름으로 한자 694자의 설명과 함께 거북선 그림이 수록됐다. 이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권위 있는 거북선 관련 사료로 평가된다.
이충무공전서에는 이순신의 시(詩)와 짤막한 글들, 지방에 파견된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보고문인 장계(狀啓)도 담겼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막으면 오히려 지켜낼 수 있습니다.(尙有十二 則猶可爲)”라고 한 이순신의 말도 ‘장계’에 적혀있다. 5~8권에 해당하는 ‘난중일기’는 1592년에 쓴 ‘임진일기’부터 ‘계사일기’ ‘갑오일기’를 거쳐 ‘정유일기속’ 등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쟁 동안 이순신이 손수 적은 글이다. 출간할 의도 없이 쓴 사적인 것이기에 원래는 연도 표시 외에 별도 제목이 없었으나 ‘이충무공전서’ 편찬 과정에서 ‘난중일기’로 이름 붙었다. ‘난중일기’의 초본은 충무공의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해 오다 지난 1962년에 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로 지정됐다. ‘난중일기’는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이충무공전서’는 두 번에 걸쳐 한글 번역본으로 출간된 적 있다. 1955년에 북한학자 홍기문이 ‘리순신장군전집’을 간행했고, 이어 1960년 노산 이은상이 홍기문의 번역을 한글 표현에 맞게 윤문한 ‘이충무공전서’완역본을 내놓았다. 재단 측은 “두 번역본은 초기 번역서로 의미 있지만 번역 문장이 오늘날 국어 표준법에 맞지 않거나 출전 및 지명 고증 오류와 오역 등이 남아 있어 학계에서는 재번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했다”면서 “한문고전 특성상 복잡한 문장구조와 난해한 표현을 현대 용어와 문법으로 고친다면 대중이 쉽게 성웅 이순신이라는 인물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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