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림포장그룹 대주주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지난주 인수 후보들에게 티저레터(투자안내문)을 발송한 가운데 한솔제지의 움직임에 제지업계의 촉각이 집중되고 있다. 한솔제지가 가진 ‘의지’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제지업계의 판도가 바뀌게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솔이 얼마를 배팅하느냐에 따라 제지업계 지형이 변한다는 뜻이다.
1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한솔제지와 신대양제지, 아세아제지 등 인수후보들은 태림포장과 태림페이퍼 인수 가격을 얼마로 써내느냐를 놓고 치열한 물밑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업계 1위 한솔이 통 크게 배팅할 것에 대비해 신대양과 아세아가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딜은 제지 업계의 판도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인수합병(M&A) 건이다. 우선 제지 업종은 전통 산업이어서 급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타 업종에서 태림포장그룹 인수에 뛰어들 가능성은 없다. 제지 업계 내부에서 승부가 나기 마련이어서 M&A 결과는 곧바로 업계 판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 다음으로는 태림포장그룹의 주력 제품이 골판지라는 점이 중요하다. 종이는 신문용지, 인쇄용지, 산업용지, 특수용지, 골판지, 백판지 등이 있는데 이 중 유일하게 시장 규모가 성장하는 분야가 골판지다. 온라인 쇼핑이 계속 커지는데다 최근엔 새벽배송까지 대유행을 타면서 포장용 골판지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월 중국이 환경 보호 차원에서 골판지 원료인 폐지 수입을 줄이면서 국내에 폐지가 남아돌기 시작했다. 2018년 1월 톤당 136.4원이던 폐지 값은 계속 하락해 올해 3월 75원에 불과하다. 이에 지난해 골판지 업계는 원료가 하락으로 엄청난 이익 개선을 실현했다. 그러나 스마트 기기가 발전하고 전세계가 ‘페이퍼리스’ 사회를 추구하면서 다른 지종(紙種)은 수요가 줄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골판지 회사가 매물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제지업계를 흔드는 빅 이슈다.
한솔제지와 아세아, 신대양 모두 태림포장그룹을 원하지만 그 배경은 서로 다르다. 한솔은 제지 업계 1위 기업이지만 골판지 사업이 없다. 골판지를 만드는 태림포장과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는 태림페이퍼를 품에 안을 경우 한솔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제지업계의 지배적 사업자가 된다. 또한 한솔그룹 체질을 제지 전문 그룹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세와와 신대양은 태림포장그룹을 인수하면 골판지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태림포장의 지난해 매출은 6,087억원이고 영업이익은 357억원이다. 태림페이퍼는 지난해 4,829억원 매출에 무려 884억원의 영업익을 실현했다. 인수 후보 중 신대양은 지난해 7,094억원 매출과 1,16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아세아는 7,758억원 매출과 983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들 모두 태림포장·태림페이퍼 인수에 성공할 경우 외형을 세 배 가까이 키우는 한편 이익 규모 또한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신대양과 아세아 모두 태림포장·태림페이퍼를 단독 인수하면 단숨에 한솔과 제지업계 1위 자리를 다투는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한솔제지는 지난해 1조7,923억원 매출과 1,114억원의 영업익을 기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한솔의 태림 인수 의지가 대단히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태림포장그룹 지분 가치를 6,500억원 안팎으로 보고 있고 IMMPE는 최대 1조원까지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솔은 지난 3일 “무리한 인수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은 한솔이 신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어 성장세에 있는 골판지 사업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실제 한솔은 태림포장그룹 인수에 실패할 경우 신문용지 기업인 전주페이퍼를 인수할 계획이다. 이 역시 신문용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비를 개조해서 골판지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서다. 회사 관계자는 “신문과 골판지는 같은 폐지를 원료로 사용해 공장을 개조하면 골판지 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 전주페이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페이퍼 전신 전주제지는 한솔제지의 모태로 한솔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신문용지 사업을 분리 매각한 바 있다. 한솔 측은 모태 기업을 되찾는 데에도 의미를 두고 있냐는 질문에 “그런 건 없다. 오직 사업적인 면만 보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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