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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백남준을 만나다]파우스트를 살려낸 삼성가 맏이

<8>백남준과 한솔 이인희 고문

뿔뿔히 흩어질 위기 초대형 '파우스트'

이인희 고문 '건강' 소장하며 반출 막아

'車에 치여 죽은 로봇' K-567도 사들여

'뮤지엄산' 개관하며 '백남준관' 마련

'커뮤니케이션탑''위성나무' 등 전시

막막하던 창작활동에 든든한 후원자로

1995년 박영덕화랑에서의 개인전 개막식에 참석한 이인희(왼쪽) 전 한솔그룹 고문과 백남준이 작품에 관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박영덕화랑




백남준이 1995년 서울 박영덕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맞춰 새로 제작한 로봇 ‘K-567’이 청담동 대로에서 자동차에 치어 ‘죽게’ 하는 ‘길 위의 로봇’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박영덕화랑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7채널 건강’ /서울경제DB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동시에 일찍이 ‘로봇기술’에 눈 뜬 예술가였다.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피 뚝뚝 흐르는 소머리를 현관 위에 내건 파르나스갤러리의 첫 개인전으로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백남준은 곧이어 일본으로 공연여행을 떠났다. TV에 심취한 그에게 형 백남일이 일본에 머무르며 전자기술을 익혀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전자기술자 아베 슈야를 만났다.

아베와 협업해 탄생한 백남준의 첫 로봇인 ‘로봇 K-456‘은 뉴욕으로 가 1964년 8월 31일 제2회 아방가르드 축제 개막식에서 ‘로봇 오페라‘ 공연을 펼쳤다. 금속 뼈대로 이뤄져 마치 해골이 돌아다니는 듯했던 ‘K-456’은 두 발로 설 수 있었고, 원격 조종으로 혼자 걸을 수도 있었다. 획기적이었다.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후 백남준은 K-456을 처분하기로 결심한다. 미술관 앞 메디슨 가에서, 지나가던 무고한 차가 로봇을 치어 죽게 하는 교통사고를 꾸민다. 동고동락한 로봇이 창조주 손에 죽는 이 사건을 백남준은 ‘21세기 최초의 사고’라 명명했다.

이후 1995년 서울 박영덕화랑에서의 개인전에 맞춰 백남준은 로봇 ‘K-567’을 다시 제작했다. 로봇이 두 발로 서서 관절을 움직이며 걷는 것은 여전히 놀라웠다. 그는 로봇을 전시장 앞 청담동 대로에서 또 차에 치어 ‘죽게‘ 만들었다. ‘길 위의 로봇‘이라는 퍼포먼스로 교통사고 당한, 그리하여 고철 신세가 된 이 로봇을 사들인 혜안의 인물이 있다. 최근 별세한 이인희(1928~2019) 전 한솔그룹 고문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큰딸이자, 이건희 회장의 누나이며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언니다. 이인희 고문은 당시 전시장에 참석해 로봇의 교통사고를 직접 목격하고 구입을 결정했다.

이인희 고문은 명실상부 국내 ‘1호 여성 컬렉터’였다. 이병철 회장이 문화재와 미술품에 남다른 애정을 쏟으며 수집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룹 승계과정에서 한솔제지와 신라호텔을 맡게 되면서 이 고문의 작품 수집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약 40년의 수집으로 이뤄낸 열매가 2013년 5월 원주 오크밸리 옆에 개관한 한솔문화재단의 뮤지엄산(SAN)이다.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았고 ‘빛의 거장’이라 불리는 세계적 작가 제임스 터렐 의 아시아 최대 전시관도 곁에 둔 이 미술관을 두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어디에도 없는 꿈의 미술관”이라고 극찬했다. 미술관 전시장은 이인희의 호를 따 ‘청조갤러리’라고 이름 붙이면서 딱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바로 ‘백남준관’이다. 공간과 예술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특성을 살려 돌벽이 감싼 원형 전시장에 오로지 자연채광이 단 한 점, 백남준의 작품만을 비추게 만들어졌다.

백남준 ‘위성나무’ /서울경제DB


뮤지엄산은 백남준관의 첫 작품으로 ‘커뮤니케이션 타워’를 선보였다. 우리말로는 ‘송신탑’ 정도로 번역되겠다. 높이 5.2m의 거대한 사각뿔 모양의 탑 구조물에 TV모니터와 세계 각국의 탈을 박아 넣은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전 지구를 연결하는 소통’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1995년에 갤러리현대와 박영덕화랑 등이 함께 기획한 백남준 개인전 ‘예술과 통신’의 대표작이었고 조선일보미술관에 전시돼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듬해 2014년 봄에 보여준 두 번째 작품은 1991년작 ‘인도는 바퀴를 발명했지만 플럭서스는 인도를 발명했다’였다. 길이 406㎝, 폭 160㎝의 바퀴 넷 달린 수레 위에 TV모니터가 잔뜩 올려진 작품이다. 오랜 풍상을 겪은 듯한 나무 손수레와 텔레비전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하지만 예술 장르 간의 융합을 보여주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한 플럭서스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기원전 3,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탄생한 ‘바퀴’는 인류 문명에서 혁신적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바퀴와 수레의 발명은 자동차 문명으로 이어졌다.



백남준이 항상 주목했던 것이 바로 ‘이동성’이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정보의 확산이 광속으로 이뤄지는 매체라는 면에서 또 다른 ‘이동성’의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이동을 가능하게 해 세상을 더 가깝게 만든다는 공통성 아래 각각 과거와 미래의 상징물로 함께 놓인 것이다. 수레 위 텔레비전은 제멋대로 놓여 다채로운 화면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일부러 기계 내부가 드러나고 어지러운 전선들도 그대로 노출하게 했다. 흐트러진 모습까지도 인정하는 것은 백남준 특유의 낙천성이었다. 누군가 전기줄을 가지런히 정리라도 할라치면 야단을 쳤다. “작품 뒤도 보여주라, 왜 가리려고 하느냐”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라고 강조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춘 ‘세계와 손잡고’까지 위성예술 3부작을 성공으로 이끈 백남준은 인생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 백남준이 1989년부터 1991년까지 공들여 제작한 13점 연작이 있으니, ‘나의 파우스트(My Faust)’ 시리즈다. 겉모습은 서양의 고딕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뾰족한 첨탑을 가진 제단 형태다. 그 틀 안에 TV 모니터를 각 4대씩 6줄로 채워넣고 삐죽 솟은 꼭대기에 1대를 더해 총 25대를 설치했다.

백남준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요소로 지목한 환경·농업·경제·인구·국수주의·종교·건강·예술·교육·교통·통신·연구개발(R&D) 등 12개의 주제에 자신을 상징하는 ‘자서전’까지 총 13점을 같은 형식으로 제작했다. 각각의 작품은 주제에 맞춰 다른 세부 장식과 내부 영상을 갖는다. 예를 들어 ‘나의 파우스트-경제’는 여러 나라의 지폐로 외관을 감싸고 반짝이는 동전으로 첨탑을 장식했다. ‘국수주의’는 세계 각국의 국기를 두르고 꼭대기에 커다란 지구본을 매달았다.

이 작품은 1991년 8월16일 개막한 스위스 취리히를 시작으로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 등지로 이어진 백남준의 유럽 순회 개인전을 통해 선보였다. 이어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으로 국내서도 첫선을 보였다.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높이 350㎝ 이상의 대작들을 미국으로 다시 갖고 가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반출되면 뿔뿔이 흩어질 게 뻔했다. 백남준은 가급적 작품들이 모여 있기를 바랐다. 그게 한국이라면 안심할 만했다.

3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런 초대형 작품을 개인이 소장하기는 쉽지 않았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더불어 이인희 고문이 나섰다. 전선을 칭칭 두른 ‘통신’과 시리즈의 마지막인 ‘자서전’은 리움 소장품이다. 이인희는 성스러운 백색 외관 위로 작은 인체 형상이 서 있는 7번째 시리즈 ‘건강’을 소장했다. 2채널 영상에서는 우리 몸과 의술, 질병에 관한 영상이 흐른다. 거액의 작품값은 아니었으나 막막하던 백남준에게는 거금이었다. 한솔문화재단은 미술관 개관을 준비하며 ‘TV로댕’도 구입했다. TV앞에 앉은 불상이 CCTV에 찍혀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TV부처’ 시리즈와 같은 방식으로 불상 대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형상의 청동조각이 놓인 작품이다.

‘파우스트’ 연작 중 ‘예술’은 지난 2016년 갤러리현대의 백남준 10주기 전시에 출품된 적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케이옥션 경매에 ‘나의 파우스트-교통’이 추정가 8억2,000만~12억원에 나와 작가 최고가 경신을 기대하게 했으나 유찰됐다. 해외에서는 백남준 작품이 10억원 이상에도 거래되는 것과 비교하면 고국에서의 결과는 씁쓸했다.

현재 뮤지엄산의 백남준관에는 1993년작 ‘1936 데소토(DESOTO)’를 만날 수 있다. /사진제공=뮤지엄산


뮤지엄산은 정기적으로 백남준관의 작품을 바꿔가며 공개했다. 2015년에는 1992년작 ‘위성나무’를 선보였다. 높이가 326㎝의, 말 그대로 나무 모양이다. 사각형의 TV가 쌓여 나무 둥치를 이루고 둥근 나무에 위성을 상징하는 TV가 열매처럼 달려있다. 기계와 생명, 과학과 종교, 찰나와 영원 같은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비디오 영상이 돌아가니 나무가 생명력을 갖고 꿈틀대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고문은 기술이 바꿔갈 미래를 강조해 남양주시 마석의 한솔제지 기술원 복도에 연구원들이 볼 수 있게끔 ‘위성나무’를 설치하기도 했다. 예술과 과학이 가진 ‘창조’라는 공통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2016년에 공개한 1995년작 TV로봇 ‘에디슨’도 인기를 끌었다. 토머스 에디슨의 대표적 발명품인 축음기·전구로 장식된 작품이다. 음악으로 예술을 시작한 백남준에게는 축음기의 발명으로 연주자 없이도 음악 감상을 가능하게 했고 음악의 대중화를 이룬 에디슨이 무척 특별했다.

지금은 1993년 대전세계엑스포(EXPO) 때 선보였던 ‘1936 데소토(DESOTO)’가 전시 중이다. 클래식 자동차 안에 한복을 차려입은 마네킹과 상체가 브라운관으로 이뤄진 TV로봇이 나란히 앉아있는 ‘자동차 조각’이다. 1936년 모델인 데소토 차량의 앞 범퍼에는 백남준이 주창했던 ‘전자초(超)고속도로’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백남준은 일찍이 1974년에 인터넷 개념인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를 착안해 뉴욕 록펠러재단에 제안했다.

이인희 전 고문의 한솔그룹은 1996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백남준을 사람들 앞으로 불러냈다. ‘청년정신’을 강조한 한솔의 기업이미지 광고의 제 5탄으로 1997년에 공개한 ‘다시 도전하는 백남준’편이다. 화면 속 백남준은 여전히 왼쪽 팔다리가 불편하다. “난 청년이야. 미래가 있는 한 우리는 청년이라고. 청년은 말이야, 도전하는 거지. 우리에게 한계는 없다고 내 인생이 끝날 그 날까지 나는 창조, 창조, 창조!” 어눌한 목소리지만 ‘창조’를 부르짖는 마지막 외침은 특히 우렁찼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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