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가 최근 몇 년 동안 화두로 떠오르며 금융권이 변화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금융투자업계는 이 흐름에 뒤처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각종 규제가 얽혀있는 것은 맞지만, 금투업계가 규제 탓만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지난 2일까지 지정한 총 18개 혁신금융서비스 가운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시중은행을 포함해 대형 카드사와 보험사까지 이름을 올린 것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그간 금융투자업계가 혁신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금융규제 샌드박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달라며 샌드박스에 도전한 금융사는 총 27개인데, 이중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고작 3군데였다. 더 큰 문제는 금융투자 혁신서비스로 지정된 곳이 이들 3곳이 아니라 IT 업체와 스타트업, 다른 금융사라는 점이다. 증권거래 관련 IT 업체인 코스콤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주주명부 관리로,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 제공사 더존비즈온은 실시간 세무·회계 빅데이터 관련 서비스로 각각 혁신서비스로 선정됐다. 스타트업인 디렉셔널은 개인투자자를 위한 주식대차 플랫폼을 이르면 다음 달부터 운영할 예정이고, 증권사의 알짜 사업으로 떠오른 부동산 유동화 관련 혁신서비스의 경우 블록체인을 접목해 개인의 간접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시중은행과 스타트업, 신탁사들이 기회를 얻었다.
샌드박스가 규제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기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금투업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증권사의 비즈니스 모델 특허 등록 수는 71건으로, 같은 기간 543건인 은행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 금투업계 최초로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에 뛰어든 한국금융지주는 극소수의 사례일 뿐이다. 안유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증권사가 새 수익원 확보보다 무료 수수료 같은 출혈 경쟁에 집중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무료 수수료 경쟁, 공모시장 위축 등으로 금투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따라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측면이 있긴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는 주로 개인 고객의 편의 제고에 초점을 맞추는데 증권·운용 시장은 개인투자자의 입지가 갈수록 적어지는 문제점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타개책으로 부동산 투자 확대, 특히 자기자본이 수조원대인 대형 증권사까지 부동산 유동화에 열을 올리는 것은 금융 건전성은 물론 금융산업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표방하며 인·허가 문턱을 낮춰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골드만삭스는 2015년부터 스스로를 IT 회사라고 선언하고 인력의 절반 이상을 개발자, 엔지니어로 채웠다”며 “카카오의 바로투자증권 인수 시도가 주는 메시지를 곱씹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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