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이 지하자금 양성화를 목표로 삼아선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권과 구권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소위 ‘장롱 속’ 자금이 양성화되고 이를 세원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리디노미네이션 찬성론자들의 의견과는 달리 무기명, 무제한으로 화폐 교환을 해줘야 국민 반발이 수그러들 수 있다는 논리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리디노미네이션 토론회에서 “화폐단위 변경은 ‘공’ 세개를 떼어내는 거 외에는 없어야 한다”며 “돈을 바꿔줄 때는 무제한, 무기명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폐단위 변경이 이뤄지면 통상 신권과 국권의 교환 과정에서 지하자금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세원으로 잡힌 지하자금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세수 증대 효과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박 전 총재의 주장은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지하자금 양성화를 목표로 리디노미네이션을 진행한다면 국민들의 반발로 논의가 좌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 역시 “이탈리아에선 유로화 도입을 위해 10년 동안 천천히 화폐 교환을 시행했다”며 “이 과정에서 마피아들은 천천히 10년간 자국 통화를 달러로 바꿨다가 유로로 바꿨다. 결국 경제 교란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여야 의원들은 축사를 통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축사에서 “국가총생산(GDP)의 20%가 지하경제”라고 소개하며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GDP의 25%에 달하는 경제 양성화를 이유로 리디노미네이션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물가 상승 영향도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의 저물가 상황은 인플레라는 리디노미네이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낮추는 요인”이라며 “올해 들어 4개월 연속 1%에 못미치는 상승률을 기록 중이라 리디노미네이션시 우려되는 부담이 완화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폐단위 변경의 수반 비용을 근거로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코노미스트는 “현금을 실물에 투자해 부동산을 중심으로 투기자금이 몰리거나 해외로 이탈할수 있고 단위적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 둔화 가능성, 경제불안 심리를 부추 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임동춘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도 “자동화 기기와 자동판매기 교체, 전산시스템 수정을 포함해 많은 직접 비용이 유발되고 화폐 교환 과정에서 발생 할 수 있는 개인정보 노출과 재산상 손실에 대한 우려로 상당한 간접 비용이 발생 할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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