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스로 ‘소셜디자이너’라는 직책을 갖고 활동해왔습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창의적인 생각을 강조해오신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박사님의 의견에 동감하고 있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생경한 분야의 권위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시간주립대 생리학과 교수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박 시장이 기존 교육과정을 탈피하기 위해 추진하는 시립 대안학교, 스페인 건축자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서울 도심 내 건축의 변화를 이끌겠다며 내놓은 도시건축 혁신 방안 등으로 나타난 실험정신은 저서 ‘생각의 탄생’ ‘과학자의 생각법’을 통해 창의적 발상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루트번스타인 교수의 생각과 맞닿아 있었다.
박 시장은 16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워커힐서울에서 열린 루트번스타인 교수와의 라운드테이블에서 “기존의 생각을 넘어 새로운 혁신을 하는 것은 과학자나 공학도뿐만 아니라 도시 행정에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루트번스타인 교수의 대표 저서인 ‘생각의 탄생’을 언급하며 시(市) 행정에서도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장으로 당선된 직후부터 사회혁신국을 따로 만들어 기존의 관료 시스템과 정책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왔다”며 “취임한 지 이제 8년이 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들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이어 최근 순방을 다녀온 이스라엘 사례를 들면서 “질문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최근 방문한 이스라엘은 인구 900만명 규모의 작은 나라지만 노벨상 수상자도 많고 미국 나스닥시장에 95개의 회사를 상장했을 정도로 창업이 활발한 국가”라며 “그 배경에는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는 호기심, 이른바 ‘후츠파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후츠파는 히브리어로 담대함·저돌성을 뜻한다. 최근에는 형식이나 권위에 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행동을 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박 시장은 “반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여전히 암기식 교육에 머물러 있다”며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열린 사회로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라운드테이블에 함께 참석한 김남식 카오스재단 사무국장은 과학 강연이나 지식 콘서트를 열어서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재단의 성격에 대해 소개한 뒤 “일반 대중들에게 더욱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루트번스타인 교수에게 질문했다.
이에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예술가들은 과학적 소재를 가지고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며 “화학물질을 통한 미술 작품도 가능하고 컴퓨터 등 기계를 통한 모던아트 등도 있는데 예술가들과 교육가들의 협업을 통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가령 박물관 같은 장소도 창의성을 자극하는 장소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취임 이후 10여개의 박물관을 추가하기로 했다”며 “호기심은 강의실 안에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현장에서 돌아다닐 때 자극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루트번스타인 교수의 말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과거 우리 경제가 짧은 시간에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로 온 것은 남의 것을 보고 잘 따라 했기 때문”이라며 “5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이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식행사 종료 후 이어진 오찬에서는 훈훈한 농담도 오갔다. 박 시장이 “교수님의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일을 하고 있으니 저도 교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다”고 말하자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웃으면서 “무슨 일이 잘못되면 내 이름을 대라. 나의 제자이니까”라고 화답했다. 또 루트번스타인 교수가 “나는 생리학과 교수가 될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이 길을 걷게 됐다”고 언급하자 박 시장은 “저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체포만 되지 않았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며 “체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검사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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