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비즈니스를 발굴해내는 스타트업들은 ‘최초’라는 수식어에도 시장 선점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특별한 기술에 바탕을 둔 창업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정보기술(IT)을 결합한 형태라면 유사한 비즈니스모델(BM)을 들고 나온 기업의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가 더욱 어렵다. 여기에 막강한 자본을 등에 업고 활발한 마케팅을 벌이는 경쟁사까지 있다면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냈어도 ‘짝퉁 아이디어’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견기업 H사는 중견·중소기업과 시니어 전문가를 이어주는 인재매칭 플랫폼을 새롭게 선보였지만 앞서 유사한 서비스를 베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문제가 된 서비스는 H사의 주된 비즈니스 영역인 인재교육과도 연결돼 있는데다 산업분야별로 검증된 전문가를 각 기업의 요구사항에 맞게 매칭한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스타트 업계에서는 지난 2016년 창업한 A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플랫폼 P와 H사의 신규 서비스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은퇴자와 경력단절자의 노하우를 활용하려는 취지로 창업한 A씨는 데모데이에서 유망기업으로 선발돼 투자 유치까지 성공했지만 H사의 공격적 공세에 결국 BM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H사가 업무협력 등을 언급하며 비즈니스모델을 상세하게 물어봤을 때 구체적으로 답변해줬던 게 후회스럽다”는 A씨는 “서비스 확장 측면에서 같이 진행할 비즈니스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결국 마케팅 ‘톤앤매너’까지 유사한 ‘짝퉁’ 서비스로 돌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기업뿐 아니라 정부기관도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의혹을 받는다. 대표적 사례는 바이오캡슐을 활용해 소의 생체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하는 유라이크코리아의 ‘라이브케어’와 농촌진흥청의 축우관리 시스템 간의 특허모방 의혹이다. 법적 대응까지 언급됐던 이 의혹은 농촌진흥청이 유라이크코리아의 해외진출 과정을 돕는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일단락됐지만 창업자들에게 ‘정부기관 경계령’이 발령되기에 충분했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서비스를 시장에 빠르게 안착시키려면 자본이 많이 필요한데 이제 갓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은 자본력이 달리기 때문에 기반이 탄탄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시장을 선점하기가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많은 투자자들은 ‘거대 포털사나 대기업이 서비스를 모방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본다”며 “바보 같은 질문일 수 있지만 그만큼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스타트업이 특허등록을 통해 보호받는 것은 별도의 신청과 심사를 거쳐야 하는 만큼 간단하지 않다. 특히 영업방법 자체만으로는 특허등록이 불가능하며 아이디어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 수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해당 기술의 혁신성과 진보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런 이유로 ‘BM특허 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홍경희 특허청 정보기술융합심사과 특허팀장은 “BM특허도 다른 기술특허와 출원절차·심사과정이 동일하다”며 “BM특허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것이다 보니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아이디어 수준의 출원요청 건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홍 팀장은 이어 “추상적 아이디어에 가까운 영업방식이나 기존 기술을 단순하게 결합하는 것으로는 특허가 인정되지 않기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체감상 특허등록이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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