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삼쏘(삼겹살에 소주)’, ‘치맥(치킨에 맥주)’을 일상의 낙으로 즐겼던 직장인 A씨는 올해 들어 외식 횟수를 확 줄였다. 돼지고기 삼겹살은 한 달 새 16% 넘게 가격이 뛰어 마트에서도 장바구니에 선뜻 담기 어려워졌다. 식당에서는 소주·맥주 1병을 5,000원에 파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A씨는 “지난해는 과일·채소 값이 무섭게 뛰었는데 올해는 골고루 안 오르는 게 없는 것 같다”며 “물가 상승률이 역대 가장 낮다는데 딴 세상 얘기 같다”고 말했다.
외식·생활필수품 가격부터 대중교통 요금까지 생활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가장 먼저 와닿는 분야는 외식 물가다. 19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을 보면 지난 1년간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 8개 가운데 7개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냉면은 평균 8,962원으로 전년 대비 3.1% 올랐고 김밥은 8.1% 뛰었다. 특히 여름을 앞두고 ‘냉면 맛집’들이 잇달아 값을 올리면서 유명 식당의 냉면 한 그릇 가격은 1만2,000~1만7,000원까지 올랐다.
김치찌개 백반 평균 가격도 6,000원을 넘겼다. 서울 종로구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B씨는 “7,000원에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며 “원재료 가격부터 인건비까지 안 오른 게 없다”고 토로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외식 업종은 경기 불황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이라며 “재료비·인건비 부담에 음식값을 올리지 않으면 매장을 접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활필수품도 마찬가지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서울·경기 420개 유통업체에서 올해 1·4분기 38개 생필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1년 전보다 21개의 값이 올랐다. 세탁세제, 우유, 생수, 생리대 등 상승률 상위 10개 품목의 평균 인상률은 6.6%였다. 가정주부 C씨는 “마트에서 3인 가족의 일주일치 장을 보면 몇 개 안 담아도 10만원이 금방 넘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공행진 중인 체감물가와 달리 정부는 ‘통계상 0%대 물가 상승’을 “물가 안정”의 지표로 강조하고 있다. 실제 정부 공식 물가지표인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0%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정부가 무상급식·교육,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을 통해 관리물가를 억누른 효과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정부 정책의 효과를 따로 놓고 보면 물가상승률은 1%대 중후반 수준”이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올해 들어 공공서비스 물가는 -0.3%로 마이너스 행진을 보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여파로 개인서비스 물가가 2% 안팎의 높은 상승률을 유지한 것과 정반대다.
소비자물가를 산출할 때 가중치가 큰 품목이 서민들이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품목과 다르다는 점도 괴리의 원인으로 꼽힌다. 가장 가중치가 큰 부문은 전·월세인데 이는 지출 빈도가 낮은데다 가격 변동이 잦지 않아서 소비자로서는 체감도가 떨어진다. 반면 식료품이나 외식처럼 매일 소비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가격 변동에 민감할 뿐더러 값이 오르는 것을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체감물가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일단 버스 파업을 무마한 대가로 경기도 등 전국 5곳 시도의 버스요금 인상이 예고돼 있다. 앞서 서울과 경기도가 택시 기본요금을 올린 데 이은 것이다. 지난 7일부터 유류세 인하 폭이 줄며 전국 주유소의 기름값도 일제히 오른 상태여서 서민들의 교통비 부담은 더 가중될 전망이다. 더욱이 최근 1,200원에 바짝 다가설 만큼 급락한 원화값 영향으로 수입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
/세종=빈난새기자 허세민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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