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1주기다. LG는 이날 오전10시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본사에서 계열사 임직원들이 모여 간소하게 추모식을 갖고 고인을 기리게 된다. LG에 지난 1년은 큰 변화의 시기였다. 구본무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후 40대 초반의 젊은 총수 구광모 회장이 짊어진 짐이 너무 크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지만 조직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고 긍정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광모 체제가 인사와 조직 개편 등을 통해 자기 색깔을 본격적으로 내는 것 같다”며 “특히 LG 특유의 보수적 색채에도 변화의 기운이 감돈다”고 말했다.
우선 LG의 의사 결정이 이전보다 신속·과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회장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LG전자(066570)는 연료전지 자회사인 LG퓨얼셀시스템즈와 수 처리 자회사인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을 정리 중이고, LG디스플레이는 일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사업을 접었다. LG이노텍의 고밀도다층기판(HDI) 사업, LG화학의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도 매각을 검토 중이다. 수년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은 평택 생산 라인을 베트남 하이퐁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면 결행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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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투자도 도드라진다. 통신업계 만년 3위인 LG유플러스는 케이블 TV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 인수로 지각 변동을 꾀한 게 대표적이다. LG화학은 OLED 재료 기술 인수를 결정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강한 LG 문화에도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인재 영입은 그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LG가 외부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한 것은 지난 2010년 KT 출신의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이 마지막이었지만 구광모호 출범으로 빈도가 잦다. LG화학 부회장에 신학철 3M 수석부회장 선임, ㈜LG 자동차부품팀장에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형남 부사장 영입 등이 대표적이다.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행보도 눈에 띈다. 특히 기술력을 갖춘 스트타업을 집중 타깃이다. 지난해에 LG전자 등 5개 계열사가 총 4억2,500만달러를 출자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모빌리티·가상현실(VR)·바이오·모바일 분야 6개 기업에 투자했다. 실제 구 회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첫 현장 행보로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했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 내외부의 아이디어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가치를 창출하는 개방형 혁신을 위해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국내외 중소·스타트업 발굴을 강화해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LG에 남아 있는 과제도 적지 않다. 계열 분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LG가는 그간 ‘장자 경영권 승계’ 전통에 따라 경영체계가 바뀔 때마다 계열 분리를 진행했다. 3월 주주총회에서 물러난 구본준 전 LG 부회장의 경우 계열 분리가 정중동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계열 분리 작업이 조만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지만 경기 침체 등으로 업종 전반이 힘든 만큼 더 시간을 두고 숙고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고병기·박효정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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