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아이스크림을 간절히 원한다.‘ 우버 테크놀로지스가 지난 2012년 시작한 아이스크림 데이 프로모션이 표방한 아이디어다. 이 승차공유 거인은 고객들이 매해 여름 하룻동안 우버 앱을 통해, 디저트를 즉시 배달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미국 대기업이 아이스크림 캠페인을 53개국으로 확대한 2015년 6월, 말레이시아 기업가 앤서니 탠 Anthony Tan은 우버를 외부인으로 밀어낼 기회를 포착했다. 대신 자신이 세운 토종 차량호출 벤처기업 그랩 Grab을 세련되게 어필했다.
우버의 이벤트 직후, 그랩은 말레이시아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제공했다: 바로 냄새가 강한 과일 두리안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거주하는 고개들은 그랩 기사가 신속하게 문 앞까지 배달한 이 톡 쏘는 냄새의 과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랩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특별 포장까지 해야 했다: 두리안은 맛이 매우 좋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 많은 공항과 호텔에서는 반입이 금지될 정도다. 그랩은 이 장애를 극복하고, 단 1링깃(24센트)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과일을 제공했다. 두리안은 즉시 매진됐고, 대성공을 거둔 이 ‘그랩두리안’ 마케팅 정책은 현재 4년째 순항하고 있다.
탠은 “어떤 외국인도 그럴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깔깔 웃으며 “우버는 동남아시아에서 성공하기 위해 어떤 현지화 전략을 취해야 할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랩은 눈부신 성공을 거둔 초현지화(hyperlocal) 전략을 채택해 왔다. 2012년 쿠알라룸푸르 교외의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한 이후, 이 벤처기업은 8개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기사 수는 280만 명을 자랑한다. 우버가 주장하는 200만 명보다 훨씬 많다. 그랩은 자사 앱이 1억 3,900만 개의 기기에서 다운로드를 받았고, 하루에 600만 건 이상의 승차호출 주문을 처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억 달러를 돌파한 매출은 올해 2배 증가할 전망이다. 그랩은 아이스크림을 배달한 라이벌을 줄곧 제쳐왔다: 우버는 마침내 작년 3월 ‘그랩 지분 27.5%와 이사회 자리를 넘기고, 동남아 사업을 그랩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탠(37)과 공동 창업자 후이 링 탠 Hooi Ling Tan(35ㆍ같은 말레이시아 출신이지만 앤서니와 친척은 아니다)은 택시 사업을 넘어 영역을 확장하려는 열망이 강하다. 그들의 목표는 그랩을 ’매일 사용하는 슈퍼 앱‘으로 바꾸는 것이다. 승차 서비스와 함께 음식 배달, 디지털 결제, 금융, 심지어 의료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다방면에서 소비자들과 연결할 앱 말이다. 현재 이 지역의 6억 5,000만 소비자 대부분은 중국과 서구에서 오랫동안 당연시 해온 편리함(승차공유 서비스)만 누리고 있다. 그랩은 자사 앱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든 상품 및 서비스와 연결고리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
2017년 기준, 동남아의 GDP는 2조 8,000억 달러다. 단일 국가라면, 전 세계 7위 경제대국에 해당한다. 현재 성장 속도를 유지하면, 2030년경에는 4위까지 도약할 전망이다. 하지만 시장 규모는 투자자들을 유인할 일부 요소에 불과하다. 슈퍼 앱은 고객들과의 새로운 연결 방식을 약속한다. 또한 그들의 취향과 구매 습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의 보고를 확보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랩 모델은 이미 중국에서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텐센트의 위챗이 선구적으로 시도한 바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블로그 글에서 ’페이스북이 그랩 모델을 따라 하길 희망한다‘고 시사했다. 많은 사람들은 슈퍼 앱 서비스와 그 서비스들이 생산하는 데이터 매출이 승차공유 매출보다 더 안정적이고, 수익성과 성장성이 더 뛰어날 것이라 믿는다. 그 동안 승차공유 사업은 초고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슈퍼 앱 모델은 전 세계 중 동남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랩이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과 도요타 자동차, 중국 승차공유 거인 디디 추싱 Didi Chuxing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유수의 대기업들로부터 벤처 자금 86억 달러를 유치한 원동력이다. 회사는 최근 펀딩 라운드에서 14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았다. 동남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유니콘에 등극한 것이다.
앤서니는 “그랩이 지역 소비자들의 니즈를 적극 수용했기 때문에 우버를 제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회사는 비교적 소득이 적은 이 지역에서, 값비싼 ‘우버 블랙’ 서비스에 맞서기 위해 저렴한 택시와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그리고 우버가 신용카드 결제를 요구한 반면, 그랩은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들이 현금 결제를 할 수 있도록 중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물론 두리안 서비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전투에서 그랩은 전혀 홈 어드밴티지를 못 누리고 있다.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했지만, 앤서니 탠은 최근 70% 이상의 시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성공이 지역 디지털 헤게모니를 잡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동남아 GDP의 4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은 기술에 무척 밝다: 휴대폰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인 74%가 전자상거래 구매를 한다. 소셜 미디어 관리 플랫폼 훗스위트 HootSuite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인도네시아 전 지역에서, 그랩 기사들은 승객 확보를 위해 라이벌 고젝 Go-Jek 기사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 지역 토종 벤처업체는 구글과 텐센트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100만 명 이상의 기사들을 보유한 고젝은 2,500만 월간 사용자들을 위해 1억 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한다. 고젝 또한 슈퍼 앱이다: 이 신생기업의 18가지 주문형 서비스에는 고 마트 Go-Mart(식료품 쇼핑), 고 클린 Go-Clean(집 청소), 고 글램 Go-Glam(머리손질과 화장), 고 마사지 Go-Massage(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등이 있다. 고젝은 자사 앱의 다운로드가 1억 800만 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아울러 앱 사용자의 최소한 절반이 자체 결제 서비스 고 페이 Go-Pay를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올해 34세의 고젝 창업자 나디엠 마카림 Nadiem Makarim은 인도네시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다. 그는 2명의 탠이 자신의 슈퍼 앱 모델을 도용했다고 비난한다. “그랩이 그 용어를 우리에게서 가로채려 한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다.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들은 첫 몇 년간 우버를 모방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이제 다음 3년은 고젝을 베낄 차례인가?’” 마카림이 날린 잽은 그랩으로부터 날카로운 반격을 받았다(물론 이 회사 창업자들이 슈퍼 앱의 개념을 고안했다고 말할 순 없다). 2명의 탠은 포춘에 보낸 이메일에서 “아이디어가 좋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런 공방은 마카림과 두 탠 간의 라이벌 의식에 영향을 미친 개인적인 악연을 암시한다. 바로 친밀함에 뿌리를 둔 경멸이다: 3명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같이 다닌 친구 사이다. 그들은 한 때 서로를 가족처럼 여겼다.
최근까지 그랩과 고젝은 서로의 사업 분야가 겹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목표 시장이 근접하며, 둘은 충돌 일보직전이다. 두 회사는 많은 도시에서 무차별적인 가격 전쟁에 돌입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이용 외에도 다른 서비스 요금을 대폭 할인하고 있다. 둘의 갈등은 시각적으로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 두 벤처기업은 CI 배경색으로 나란히 녹색을 채택했다. 그랩 기사들은 숲 색깔의 복장을 입고, 고젝 기사들은 라임 색에 가까운 밝은 녹색 장식을 하고 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두 회사 기사들이 주요 도로를 온통 녹색의 물결로 뒤덮는다.
현재는 그랩이 앞서고 있다. 회사는 고젝보다 더 많은 시장에 진출했고, 동남아 지역의 6대 시장에서 전자결제 허가를 취득했다(고젝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만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랩은 우버 지분을 인수하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에서 차량호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고젝은 각각의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BI 리서치에 따르면, 그랩은 인도네시아에서조차 승차공유 시장 62%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고젝은 이 통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젝은 무시 못할 적수다. 시장조사업체 크런치베이스 Crunchbase에 따르면, 이 신생기업은 31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고젝의 기업 가치를 110억 달러로 추산한다. 마카림은 고젝의 서비스 범위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 장담한다. 비록 두 벤처기업의 차량호출 사업이 적자를 보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마카림은 고젝이 비(非) 운송 분야에서는 거의 흑자에 근접했다고 주장한다(두 회사 모두 공개적으로 사업별 매출 규모를 상세히 밝히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둘의 경쟁이 갈수록 흥미롭게 전개돼 어느 한쪽의 우위를 섣불리 점칠 수 없다고 본다. 싱가포르 인시드 경영대학원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제이슨 데이비스 Jason Davis 부교수는 “사람들은 그랩이 너무나 빠르게, 너무나 많은 투자를 받는 걸 힘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그랩이 “가진 역량을 초과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현재 차량호출 벤처의 사례 연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강의를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투자하고 싶은 기업에 투표하라고 주문한다. “처음에는 모든 학생이 그랩과 우버를 1, 2위로 꼽는다. 보통 고젝은 한참 뒤처진 3위에 그친다. 하지만 강의가 끝날 때는 고젝, 그랩, 우버로 순위가 바뀐다.”
이 싸움은 분명 하버드 강의실에서부터 시작됐다. 두 탠과 마카림은 2011년 봄 그 곳에서 ’피라미드 하단을 겨냥한 사업들(Businesses at the Base of the Pyramidㆍ앞자를 따 B-BoP으로도 알려졌다)‘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부교수 마이클 추 Michael Chu가 강의를 진행했다. 이 강의는 경영학자 C.K. 프라할라드 C.K. Prahalad와 스튜어트 L. 하트 Stuart L. Hart가 대중화한 이론으로부터 이름을 따왔다. 두 학자는 신흥시장의 최대 기회가 부유층에 영합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신 처음으로 시장 경제에 참여하려는 가난한 수십억 명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후이 링 탠과 마카림은 하버드 입학 전부터 친구였다. 둘은 졸업 후 매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탠은 쿠알라룸푸르에서, 마카림은 자카르타에서 근무했다. 둘 모두 앤서니와 친분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말레이시아의 가장 유명한 기업가 중 한 명인 탠 흥 추 Tan Heng Chew의 사교성 좋은 막내아들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셋 모두 엉망으로 운영되는 고국의 교통시스템에 절망하고 있었다. ‘광적인 얼리 어답터 (gadget freak)’를 자처하는 기계공학 석사 후이 링이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었다. 그녀가 10대 때 쿠알라룸푸르 택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교통수단이었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러 쇼핑몰을 갈 때도, 가족 누군가가 태워다 줘야 했다. 그녀가 매킨지에 근무할 때, 주식 중개인인 어머니는 딸의 귀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정을 훌쩍 넘어 기다리곤 했다.
앤서니도 같은 우려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회를 포착했다. 경영대학원 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에, 그와 친구는 렌터카 40대로 택시 서비스를 운영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차량과 승객을 연결할 방법을 몰랐다. 할아버지가 택시 기사였던 앤서니는 우버가 미국에서 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을 이용,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부친은 그가 가족 사업-동남아 지역에서 닛산 차량을 생산하고 유통한다-을 물려받길 원했다. 앤서니는 개인 벤처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가족 내에서 공공연한 반란이나 다름 없다는 점을 알았다. 복종을 최우선시하는 가풍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힘들었다. 부친은 유교적 가치를 신봉하는 분”이라고 회상한다.
마침내 ’기회의 논리‘가 승리했다. 후이 링과 앤서니는 한 팀을 이뤄, HBS 은행이 매년 개최하는 사업계획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둘은 동남아 지역에 적합한 앱 기반 택시호출 서비스를 제안했다. 그리고 2등을 차지해 2만 5,000달러를 부상으로 받았다. 마이텍시 MyTeksi라 명명한 벤처사업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종잣돈이었다.
인도네시아 법조 및 정계 유력가 출신인 마카림은 B-BoP을 그가 이미 시작한 사업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미국에서 교육 받은 그는 2010년 부업으로 고젝을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 인도네시아어로 수백 만 명의 오토바이 기사들을 가리키는 오젝 ojek에서 따왔다. 인구 3,00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 자카르타에서, 오젝은 악명 높은 교통정체를 뚫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저렴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활용됐다. 마카림 역시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동안, 이동할 때마다 애를 먹었다. 그는 “당시 개인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항상 늦었기 때문에 이 오토바이 기사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마카림 자신도 인정했듯, 오젝은 불완전한 해결책이었다. 그는 “막상 필요할 때 찾으면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많은 승객들이 가격 흥정을 벌이는 기사들을 경멸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잠재력이 큰 자원으로 평가했다. 이들을 프로 기사로 만들면, 자카르타에서 모든 사람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교통체증을 완화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마카림은 오젝 20명과 배차관리인 2명을 채용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녹색 재킷을 사 입혔다.
그랩 벤처 사업의 첫 투자자는 앤서니 탠 어머니였다. 그녀는 아들의 사업 모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성공하길 희망했다고 고백했다. 이미 아들을 문전박대한 남편이 상당한 가문 재산을 그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 위협했기 때문이다. 2014년 말경 마이텍시는 8,0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유치했다. 아울러 그랩택시 GrabTaxi라는 새 이름을 내걸고 필리핀과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현금으로 나가는 경비지출율(burn rate)이 높았다. 두 탠이 기사들에게는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승객들에겐 파격적인 할인을 제공한 탓이었다.
2014년 12월 비상장시장에서 우버의 가치가 400억 달러를 돌파하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테크 투자자 중 한 명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앤서니를 도쿄로 불러 들였다. 손 회장은 한 시간 대화를 나눈 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는 차량호출 사업의 대부 역할을 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탠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탠은 손 회장이 “내 투자를 안 받으면 당신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한다).
소프트뱅크는 당시 그랩택시에 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회사는 소프트뱅크의 지분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현재까지 이 투자는 두 탠과 손 회장에게 모두 실제로 윈윈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뱅크는 그랩을 위해 몇 차례 추가 투자유치 라운드를 주도했다. 가장 최근인 작년 3월에는 10억 4,600만 달러를 조달했다. 우버의 주요 주주이기도 한 손 회장은 회사가 그랩에 지분을 매각하도록 설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손의 투자는 처음에는 고젝에는 나쁜 소식처럼 들렸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국 밖에서 차량호출 모델에 투자할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의 그랩 지분 인수는 이 열기에 불을 지폈다. 마카림은 이 투자자들에게 ’슈퍼 앱‘ 모델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고젝은 처음부터 복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기업이었다. 마카림은 혼잡 시간대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기사들을 고용하기 위해, 그들에게 승객 운송 외에도 택배 서비스와 음식 배달 등으로 비는 시간을 채우라고 장려했다. 고젝 앱이 2015년 1월 출시된 직후, 회사는 고 바이크, 고 센드, 고 푸드 등 3가지 옵션을 선보였다. 미국 투자자들은 이 메뉴들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용자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고젝 앱이 1년 안에 1,1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한 것이다. 마카림은 서비스를 계속 추가했다. 그는 2015년 말 자카르타에서 열린 기술 콘퍼런스에서 “합법적이기만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은 60분 내에 고젝 앱을 통해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고젝은 만능이라는 장점을 앞세워 돌파구를 마련했다. 회사는 2015년 10월 싱가포르의 NSI 벤처스와 세쿼이아 캐피털 Sequoia Capital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2016년에는 KKR과 워버그 핀커스 Warburg Pincus 같은 사모펀드 기업이 주도하는 투자 라운드를 통해, 5억 5,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이로 인해 고젝은 유니콘 클럽으로 도약했다. 그랩이 2017년 말 결제 플랫폼 그랩페이 GrabPay를 선보이며 슈퍼 앱 경쟁에 뛰어들 때쯤, 두 회사 모두 든든한 군자금을 갖추게 됐다.
화약과 파스타, 지폐처럼 슈퍼 앱도 중국에서 탄생한 혁신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초창기 원형 중 하나는 알리페이다. 알리바바가 2004년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 Taobao와 나란히 선보인 결제 기능이다. 알리페이는 이후 중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결제 방식으로 발전했다. 은행계좌 및 신용카드와 연결된 이 디지털 지갑은 결제, 송금, 호텔 예약 등 매우 다양한 거래에 활용됐다. 텐센트 홀딩스가 2011년 선보인 위챗은 기능이 훨씬 더 많다. 회사는 당초 문자 메시지와 사진 교환을 위해 위챗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알리페이 같은 디지털 지갑 기능을 추가했다. 아울러 앱을 더욱 빠르고, 더욱 독특하고, 더욱 흡인력 있게 만드는 다수의 SNS 기능까지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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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박스 기사
제목
TAKING THE RACE OFF-ROAD
오프로드에서 벌이는 경쟁
전문
그랩과 고젝은 스스로를 ‘슈퍼 앱’으로 규정하고, 승차사업 너머의 고객들까지 겨냥하고 있다. 그들이 정면충돌하는 몇 가지 다른 산업 분야를 소개한다.
본문
MOBILE FINANCE
모바일 금융
그랩과 고젝 모두 중국의 알리페이와 위챗 앱의 선례를 따르길 원한다. 이들의 ’디지털 지갑‘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랩페이는 현재 동남아 6개국에서 운영한다. 마스터카드와의 제휴로 새로 선보인 선불카드가 힘을 보태면, 사용 국가를 좀 더 확장할 수 있다. 그랩 파이낸셜 서비스를 통해, 그랩은 은행계좌가 없는 지역 소비자들과 기업가들에게 대출도 해준다. 회사는 대출신용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이들의 디지털 결제 연혁을 활용한다.
고젝의 고페이 시스템은 현재 대부분 인도네시아에서만 쓰인다. 회사는 올해 60억 달러가 훨씬 넘는 거래액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OBILE GROCERIES
모바일 식료품 쇼핑
고젝이 2015년 앱을 첫 출시한 후, 고 푸드는 빠르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옵션 중 하나가 됐다. 당초 창업자 나디엠 마카림은 피크 타임이 아닐 때도 기사들을 바쁘게 만들 수단으로 조리음식 배달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매출 증가를 이끄는 효자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고 푸드가 연간 배달하는 음식 대금만 20억 달러를 넘는다. 고젝 사용자들은 고마트를 통해 식료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그랩푸드 레스토랑 배달 서비스는 작년 초 급성장했다. 그랩이 우버이츠 UberEats를 포함해 우버의 동남아 사업을 인수한 때였다. 8월에는 식료품 배달이 추가됐다. 당시 그랩은 말레이시아 배달 서비스 해피프레시 HappyFresh와 손을 잡고 고 프레시를 출시했다.
MOBILE MISCELLANY
기타 모바일 서비스
자카르타와 다른 인도네시아 도시들의 악명 높은 교통정체에 맞서기 위해, 고젝은 고객들에게 주문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토바이 기사들을 활용해 왔다. 아울러 고 클린(집안 청소), 고 글램(머리손질 및 화장), 심지어 고 마사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현재까지 그랩드러그 GrabDrug나 그랩닥터 GrabDoctor 같은 서비스는 없다. 하지만 그랩은 작년 8월 중국의 핑안 보험그룹과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했다. 앱을 통해, 의료상담 외에 의약품 배달 및 진료 예약을 제공하기 위한 포석이다.
슈퍼 앱을 운영하는 중국 테크 대기업들에 이 앱은 ’데이터의 엘도라도‘나 다름 없다. 미국 내에서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IT 선두기업들은 각각 다른 소비자 행동의 이질적 트렌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이 모든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정보를 독차지하고 있다. 즉, 수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들을 전방위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데이터는 개인정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자체 신상품을 앞세워 광고주 및 중간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수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업들에는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중국 앱들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그랩과 고젝은 더 큰 장애물을 만났다: 바로 동남아 은행들의 제한된 범위였다. 중국에서는 성인 80% 이상이 은행 계좌를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도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이 비율은 50%에 불과하다. 한술 더 떠 필리핀과 베트남에서는 35%를 밑돈다. 이런 격차는 나라별로 큰 간극을 보이는 경제 개발 수준을 반영한다. 아울러 부실한 인프라와 광범위한 지리적 상황(인도네시아만 해도 1만 7,000개의 섬이 있다)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신용 카드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수백 만 소비자들을 위해 어떤 슈퍼 앱을 만들 것인가? 고젝과 그랩은 이동성이 뛰어난 출납직원들(mobile tellers)을 확보하기 위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즉, 자동차 및 오토바이 기사들이 직접 현금을 받아 고객 디지털 지갑에 입금하는 방식이다. 이 기사들은 각 지역의 에이전트들과 함께 힘을 합치고 있다. 중간 에이전트들은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들이 온라인 구매를 하고, 대금을 지급하고, 보험에 가입하고, 대출을 신청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필요할 때는 고객들의 지갑을 채워주기도 한다.
고젝과 그랩은 식료품 배달부터 의료 상담(앞 페이지 박스 기사 참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을 놓고 일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바탕 불어 닥친 M&A와 조인트 벤처 열기에 불씨를 댕긴 건 금융서비스 경쟁이었다. 고젝은 인수를 통한 파트너십을 선호한다. 좀 더 확실하게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회사는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3곳의 주요 금융서비스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결제 부문 지배력을 강화했다. 오프라인 결제 처리업체 한 곳은 주로 소매업체들과 협업한다. 다른 결제 회사는 온라인 판매업체를 상대한다. 나머지 예금 및 대출 네트워크 기업은 농촌 지역의 근로계층 가족들이 가전제품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고젝은 이 3개 회사를 고페이 시스템 내에 통합시켰다.
반면, 그랩은 파트너십과 합작회사를 선호한다. 좀 더 빠르게 더 많은 시장에 진출할 수 있고, 그랩이 인도네시아 밖에서도 우위를 점하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회사는 작년 10월 선불카드 발행을 위해 마스터카드와 제휴를 선언했다. 그랩 고객들은 모든 마스터카드 가맹업소에서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그랩은 아울러 일본의 크레디트 사이손 Credit Saison과 그랩 파이낸셜 서비스를 공동 설립했다. 이 신설 금융사는 현재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들에게 대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때에는 크레디트 사이손의 신용 분석 노하우와 소비자 행태에 대한 그랩의 데이터를 함께 활용한다.
그랩은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한 차례 시련을 겪었다. 규제당국의 조치에 따라, 해외기업이 49% 이상의 지분을 가진 벤처기업의 디지털 지갑 서비스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랩은 인도네시아 결제 신생기업 쿠도 Kudo를 인수함으로써, 규제를 피해갔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대기업 리포 그룹 산하의 금융서비스 회사 오보 Ovo와 제휴했다. 오보의 스마트폰 결제시스템은 쇼핑 센터와 레스토랑 체인에서 경쟁력이 있다. 모기업 리포가 쇼핑몰을 소유한 덕을 톡톡히 보기 때문이다. 오보 사용자들은 또한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이에 따라 그랩은 마카림과 두 탠이 하버드에서 배운 ’피라미드의 하단‘을 넘어, 새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다.
그랩과 고젝이 무대를 다른 곳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주 전장(戰場)인 운송 분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급성장에 따른 위기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그랩이 싱가포르에서 우버를 인수하자, 기사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두 회사가 자신들의 인센티브를 취소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승객들도 가격만 높아지고 오히려 서비스는 부실해졌다고 거세게 항의했다(그랩은 예약 5분 만에 취소한 운행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폐지하는 등 사용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시작했다).
두 라이벌은 규제 당국의 강화된 감시와도 맞서고 있다. 싱가포르의 반독점 주무관청은 그랩과 우버에 9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들의 인수합병 계약이 경쟁을 침해했고, 요금을 15%나 올렸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규제 당국은 그랩에 인수합병 전 가격을 복원하고,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의무조항을 철폐하라고 명령했다. 이런 조치는 싱가포르와 다른 시장 진출을 위해 5억 달러를 쏟아 부은 고젝에는 기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해외 자회사를 세우려는 고젝의 노력도 저항에 부딪혔다. 일례로, 필리핀 규제 당국은 외국인 투자 제한을 내세워 고젝 사업의 허가를 거부했다.
때로는 업계의 큰 변화가 불안정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분노한 오토바이 기사들은 작년 10월 자카르타 도심의 리포 사옥 앞에 모였다. 이 시위자들은 그랩 경영진에게 최저임금 제안을 전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그랩 지역 본사는 리포 빌딩 내에 있다). 하지만 면담 요청이 거부되자, 기사들은 난폭하게 돌변했다. 이들은 1층 로비의 유리창을 깨트렸고, 결국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를 진압했다.
자카르타의 시위는 그랩과 고젝이 경쟁을 벌이는 시장의 변동성을 반영한다.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날로 커지는 근로자와 소비자들의 기대로 인해, 상황이 더욱 빠르게 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혼란은 결국 녹색 재킷 차림의 거인 중 하나가 다른 한쪽을 집어 삼키는 대형 인수합병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은 현재 동남아의 슈퍼 앱 시장에서, 결국 자본력을 갖춘 회사들이 수 많은 지역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장기적으로 독립적인 경쟁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 전망한다. 고젝에 투자한 사모펀드 KKR의 데이비드 카츠 David Katz는 “이 시장은 승자독식이라는 게 전통적인 시각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경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오프로드에서 벌이는 경쟁: 그랩과 고젝은 스스로를 ‘슈퍼 앱’으로 규정하고, 승차사업 너머의 고객들까지 겨냥하고 있다. 그들이 정면충돌하는 몇 가지 다른 산업 분야를 소개한다.
-모바일 금융
그랩과 고젝 모두 중국의 알리페이와 위챗 앱의 선례를 따르길 원한다. 이들의 ’디지털 지갑‘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랩페이는 현재 동남아 6개국에서 운영한다. 마스터카드와의 제휴로 새로 선보인 선불카드가 힘을 보태면, 사용 국가를 좀 더 확장할 수 있다. 그랩 파이낸셜 서비스를 통해, 그랩은 은행계좌가 없는 지역 소비자들과 기업가들에게 대출도 해준다. 회사는 대출신용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이들의 디지털 결제 연혁을 활용한다.
고젝의 고페이 시스템은 현재 대부분 인도네시아에서만 쓰인다. 회사는 올해 60억 달러가 훨씬 넘는 거래액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바일 식료품 쇼핑
고젝이 2015년 앱을 첫 출시한 후, 고 푸드는 빠르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옵션 중 하나가 됐다. 당초 창업자 나디엠 마카림은 피크 타임이 아닐 때도 기사들을 바쁘게 만들 수단으로 조리음식 배달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매출 증가를 이끄는 효자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고 푸드가 연간 배달하는 음식 대금만 20억 달러를 넘는다. 고젝 사용자들은 고마트를 통해 식료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그랩푸드 레스토랑 배달 서비스는 작년 초 급성장했다. 그랩이 우버이츠 UberEats를 포함해 우버의 동남아 사업을 인수한 때였다. 8월에는 식료품 배달이 추가됐다. 당시 그랩은 말레이시아 배달 서비스 해피프레시 HappyFresh와 손을 잡고 고 프레시를 출시했다.
-기타 모바일 서비스
자카르타와 다른 인도네시아 도시들의 악명 높은 교통정체에 맞서기 위해, 고젝은 고객들에게 주문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토바이 기사들을 활용해 왔다. 아울러 고 클린(집안 청소), 고 글램(머리손질 및 화장), 심지어 고 마사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현재까지 그랩드러그 GrabDrug나 그랩닥터 GrabDoctor 같은 서비스는 없다. 하지만 그랩은 작년 8월 중국의 핑안 보험그룹과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했다. 앱을 통해, 의료상담 외에 의약품 배달 및 진료 예약을 제공하기 위한 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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