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다음 달 초 주요 유통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이끌고 일본 출장에 나선다. 신 회장이 계열사 사장을 함께 대동해서 일본 출장을 간 것은 2018년 10월 신 회장 복귀 이후 처음이다. 일본 최대 유통 회사인 이온그룹의 쇼핑몰과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 등을 둘러보면서 침체에 빠진 유통사업의 활로를 모색한다는 복안이다. 최근 롯데케미칼이 국내에 4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하는 등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의 무게중심이 화학으로 쏠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신 회장의 이번 행보를 두고 여전히 롯데그룹의 주요 뿌리는 유통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30일 재계·유통업계에 따르면 신 회장은 롯데마트 문영표, 롯데슈퍼 강종현, 롯데자산개발 이광영 대표 등과 함께 6월 초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최근 몇 년 간 국내 유통시장 급변기에 롯데그룹이 국정논단 등 대내외적 문제로 유통에서 전열을 가다듬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신 회장이 다시 유통계열사 정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은 이번 일본 출장에서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의 위기와 맞물려 유통에서 앞선 일본 업황을 둘러보고 국내에 접목할 부분이 없는지를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대동하는 계열사 CEO가 기존 강자인 백화점이 아닌 마트, 슈퍼, 자산개발로 적극적인 이커머스 공세 속에서 가장 위기를 체감하는 계열사라는 점에서 엿보이는 부분이다.
신 회장의 발걸음은 이온그룹의 대형마트와 무인양품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온그룹은 체인 브랜드 ‘이온’과 슈퍼마켓 ‘맥스밸류’, 편의점 ‘로손’과 ‘미니스톱’ 등 200여 개의 계열사를 운영 중인 일본 최대 유통회사로 2000년대 말부터 마트와 잡화점, 레스토랑, 피트니스 센터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간 대형 복합 쇼핑몰 사업을 운영 중이다. 또 일본 생활용품 기업 ‘무인양품’은 전세계 25개국에 진출해 4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의류와 가정용품 가구 식품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상품을 기획·개발하고 제조 유통 판매한다.
신 회장의 최근 화두는 미래 유통업태로 내부 회의에서도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의 변신 필요성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강화정책으로 온라인을 가져가는 동시에 오프라인도 현재와는 다른 형태로 변모해 온라인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신 회장은 강조해왔다. 신 회장은 일본 라이프스타일 서점인 ‘츠타야’가 국내에 알려지기 전부터 직원들에게 앞으로 오프라인은 소형화, 전문화가 되야 한다고 츠타야를 예로 들면서 설명했다.
특히 신 회장은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오프라인 소규모 특화점포, 전문점을 중심으로 둘러볼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오프라인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존 마트나 슈퍼 형태가 아닌 일본에서 유행하는 소규모 전문점, 프리미엄 점포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롯데마트가 선보인 냉동식품 전문매장인 ‘프레지아’ 역시 신 회장의 아이디어다.
신 회장의 이번 행보는 국내 유통업의 위기감과 뗄 수 없다. 최근 국내 유통시장의 재편 속에서 쿠팡과 이베이, 위메프, 11번가 등 이커머스와 온라인 업체가 가격 경쟁력과 배송을 무기로 국내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롯데쇼핑도 장기신용등급이 ‘AA+’에서 ‘AA’로 떨어지는 등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다. 롯데쇼핑이 2020년까지 3조원을 투자해 유통 계열사들의 온라인몰을 통합할 계획이지만, 온라인과 별도로 기존 강자인 오프라인 매장 운영은 롯데쇼핑의 또다른 숙제로 남아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번 신 회장의 일본 출장은 롯데화학이 그룹 내에서 캐쉬카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롯데의 모태는 유통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최근 일본 트렌드를 둘러보고 국내 오프라인 매장을 변신시킬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게 이번 출장의 주요 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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