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에서 동결했습니다. 모든 시장 참가자가 예상한 결정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금통위의 관심사는 소수의견의 등장 여부와 이주열 총재의 발언에 쏠려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1명 나왔고 ‘긍정’ 일색이던 이 총재의 발언도 다소 신중해졌습니다.
시장도 금리인하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금통위가 열린 날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하반기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장이 선반영한 것입니다.
◇“성장 불확실성 높아졌다”..미중 분쟁에 신중해진 한은=3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브리핑에 나선 이주열 한은 총재의 말투는 이전보다 한층 신중해진 모습이었습니다. 한은의 신중 모드는 금통위 공식 문서인 ‘통화정책 방향’에서부터 감지됐습니다. 통방문에는 “미중 무역분쟁 심화 등으로 성장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문구가 추가됐습니다. 물가와 관련해서도 “하반기부터 상승률이 1%대 초중반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문구는 유지했으나 “하방 위험은 다소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각종 경제지표 부진에도 “하반기에는 좋아질 것”이라던 기존 긍정론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초대형 불확실성이 한은의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의 최대 관심사였던 소수의견도 등장했습니다. 비둘기로 분류되는 조동철 위원이 금리 인하에 손을 든 것입니다.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 등장은 지난 2016년 이후 3년만입니다.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문구 추가와 소수의견 등장이라는 두 가지 변화로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고 이날 채권금리는 급락했습니다. 특히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라는 문구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2.5%)를 소폭 하향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한은은 오는 7월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 발표합니다.
◇美 연준서도 인하론 대두=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에 따른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 ‘2인자’인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이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를 계속 밑돌거나 글로벌 경제·금융상황이 기본 경제전망에 상당 수준 못 미치는 위험이 나타난다면 적절한 통화정책 기조를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임박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경기둔화가 이어질 경우 금리를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2.25~2.5%로 올린 뒤 금리동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금리인하로 돌아선다면 한은의 숨통도 틔이게 됩니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역전폭(현재 0.75%포인트)이 1%포인트를 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총재 “소수의견은 말 그대로 소수일뿐” =매파인 이 총재는 일단 금리 인하에 선을 그었습니다. “소수의견은 말뜻 그대로 소수의견”이라며 “이게 금통위의 시그널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금리 인하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종전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앞으로 수출과 투자의 부진 정도가 완화되고 정부의 재정정책(추경 등)에 힘입어 성장 흐름이 회복될 것으로 본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사실 이번 소수의견은 기존 소수의견과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금리를 올릴 때는 이일형 금통위원의 ‘인상’ 소수의견이 나온 뒤 2~3달 후 금리를 올리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이일형 의원은 이총재 추천몫입니다. 이 의원의 의견을 통해 한은 집행부의 의견을 엿볼 수 있는 근거입니다.
하지만 대표 비둘기파인 조동철 위원은 결이 좀 다릅니다. 태생적 매파인 이 총재나 한은 집행부(이 총재는 한은 내부인사임)와 달리 조동철 위원은 이 총재에 진 빚이 없을 뿐더러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습니다. 물론 이일형 위원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되긴 했지만 이 총재의 추천으로 금통위원이 된 만큼 이 총재와 행보를 같이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시장은 금리인하 기대감=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금리인하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금리 움직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금통위 내부에서 인하 소수의견이 나온 것만으로도 금통위 내부에서 변화가 발생했다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이 총재의 매파 본색과 조 위원의 비둘기 본색 가운데 어느쪽이 옳은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와 여부, 2분기 성장률,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 등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엇갈릴 것입니다. 만일 하반기들어 미중 무역분쟁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수출과 투자가 회복되지 못해 금리를 인하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이 총재로서는 ‘무색’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금리인하 실기론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미 한은 내부에서조차 지난해 1차례가 아닌 2차례를 금리를 올렸어야 한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지요. 만일 지난해 금리를 두차례 올렸다면 올해 금리인하 여력이 더 커졌을 것이라는 자성론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금리를 못 내리는 이유중 하나가 금리수준 자체가 너무 낮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2차례 올려 기준금리를 2.0%로 만들어놨더라면 지금쯤 금리를 인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금리를 화끈하게 올려 정책 여력을 확보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의 금리 인하 여부는 결국 미중 무역분쟁과 연준의 태도 변화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10월이나 11월 인하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대외여건 악화 시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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