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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법 시행땐 '작업중지' 남발…세부요건 명확히 규정해야"

[경제 4단체 '산안법 개정안 대한 의견' 정부 제출]

"한시간만 멈춰도 수백억 손실

중단 기준·법적근거 구체화를"

'불가피한 경우' 등 규정에 반발

"해제 절차, 신속 추진" 주장도





지난해 고무 제품을 생산하는 A기업에서 컨베이어 작업 중인 근로자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고용노동부 감독관은 사업장 내 모든 공장에 대해 전면적인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작업중지 명령은 사고 발생 18일이 지나서야 완전히 해제됐고 작업중지에 따른 이 회사의 직접 피해액만도 900억원에 달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당시 사고와 관련이 없는 물류창고 공장까지 작업이 중단되면서 완제품이 출하되지 못해 제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국내 관련 업체로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해외 바이어와 신뢰 문제도 불거졌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안전보건규칙 개정안이 내년 1월16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경영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중 무역분쟁과 인건비 상승, 내수침체 등으로 가뜩이나 경영 상황이 나빠진 가운데 산안법 개정안까지 시행되면 무분별한 작업중단에 따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수 있어서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4단체는 3일 산안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경영계 의견을 공동으로 고용부에 제출했다.

경영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산안법 개정안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세부 요건이 빠져 있어 법적 근거도 없는 자의적인 작업중지 명령이 남발될 경우 산업 현장의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반도체·화학 업체 등은 공장 가동을 한 시간만 멈춰도 수백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하는 만큼 경영계는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기준을 구체화해달라고 줄곧 요구했지만 정부는 기업들의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고용부는 법적 근거도 없이 행정상 편의 및 책임 회피를 위해 작업중지 명령을 남발해왔는데 개정안에도 구체적 규정이 담기지 않아 이런 관행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개정 산안법은 일부 작업중지 명령은 중대 재해가 발생한 후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전면 작업중지는 산업재해가 확산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불가피한 경우’에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의견서에서 “작업중지 명령의 요건인 ‘급박한 위험’ ‘불가피한 경우’에 대한 실체적 요건이 시행규칙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감독관의 자의적인 작업중지 명령 관행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경영계는 ‘중대 재해가 발생한 해당 작업 및 동일한 작업에서 중대한 안전시설의 미비로 즉시 급박한 위험의 제거가 불가능한 경우’나 ‘사업주가 긴급·임시 조치를 취했음에도 급박한 위험을 제거하지 못한 경우’ 등을 작업중지 명령의 세부 요건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아울러 이들 단체는 개정안에 감독관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기 전 사업주로부터 개선 조치에 대해 의견을 듣는 절차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관련 절차를 명확히 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영계는 작업중지 명령을 해제하는 절차도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는 사업주가 작업중지 해제를 요청할 경우 감독관이 현장을 즉시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이 없고 불가피한 경우 4일을 초과해 작업중지해제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도록 해 작업중지 해제 결정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경제단체들은 작업중지 해제 요청을 받은 감독관이 즉시 사업장을 확인하도록 하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24시간 안에 작업중지해제 심의위 개최가 가능하도록 개정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책임 범위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법률 개정으로 도급인이 도급인 사업장 밖의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해서까지 안전보건 책임을 져야 하는데 하위 법령에 책임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사업장의 많은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도급인의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대상으로 22개 장소만 명시했을 뿐 법률상 규정된 도급인의 책임 범위에 대한 기준이 없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경영계는 도급인이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책임 범위를 명확히 판단해 안전보건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급인의 제공·지정 및 지배·관리 범위를 명확하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경영계는 이밖에 일시·간헐적 출입 관계수급인에 대한 예외조치 마련, 도급 승인 화학물질의 농도 기준 화학물질관리법과 일치, 연구개발(R&D)용 화학물질의 물질안전보건자료 제출 대상 제외 등도 정부에 건의했다. 특히 용접작업 시 반경 11m 이내에 가연성 물질이 있는 경우 전담 화재감시자 배치를 강제함에 따라 조선업의 타격이 예상되므로 감시 업무가 없을 때는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등 화재감시자의 겸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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