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합법적이지만 상대를 더 아프게 할 방법을 한국에서 배운 모양입니다.” 미국 포드의 중국 내 합작법인이 ‘반독점법 위반’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200억원대 벌금을 맞은 데 대해 베이징의 한 기업 인사가 전한 말이다. 수출·수입 등 무역 불균형 때문에 관세전쟁에서는 불리한 중국이 행정권을 동원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식 보복’으로 미국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는 것이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5일 창안포드의 반독점 행위가 적발돼 1억6,280만위안(약 277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포드가 지난 2013년부터 충칭 지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판매가격을 올린 혐의다. 통상당국의 공식 발표 다음날 소식을 전하는 중국중앙방송(CCTV)·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들이 이번에는 당일로 신속히 보도했다.
일단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번 사안을 미국 무역전쟁과 연계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이 최근 미국 기업에 대한 각종 보복을 구체화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벌금 부과를 일회성으로 넘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나온 중국의 가장 최근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기업을 겨냥한 중국의 ‘사드식 보복’이 주목받는 것은 이것이 합법을 가장한 독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인 중국은 관련 당국이 사업 인허가권에서부터 반독점 조사, 소방·위생점검에 이르기까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규제권을 갖고 있다. 어느 하나라도 걸려 제재 대상이 되면 해당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을 겨냥한 보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화웨이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보낸 화물이 미국 페덱스 본부로 보내진 ‘배달 사고’를 이유로 자국 택배법에 근거해 미국 물류업체인 페덱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제재로 퀄컴·인텔 등 미국 기술업체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끊자 중국도 맞대응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주중 미국상공회의소가 최근 회원사 250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상당수 기업이 당국으로부터 점검을 확대(20.1%)하거나 통관을 지연하는(19.7%) 등의 보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당국이 노리는 진짜 타깃은 메모리반도체 기업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지난해 5월부터 미국 마이크론과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3사를 반독점 혐의로 입건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마이크론은 최근 화웨이에 대한 메모리반도체 공급을 끊어 중국 정부의 눈 밖에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 매체들은 3사 담합이 인정되면 최대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마이크론을 겨냥한 중국의 공격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 기업도 유탄을 맞을 수 있다.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했다. 시 주석은 사흘간의 일정으로 이날 러시아를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5일은 미국·영국 등 서방국가 정상들이 총출동해 영국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을 가진 날이어서 모스크바에서의 중·러 정상과 비교됐다. 시 주석은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긴밀히 협력해 세계의 평화, 안정, 그리고 정의를 지키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달 말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희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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