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시청광장과 광화문광장이 무지갯빛으로 뒤덮였다. 올해 20회째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다. 퀴어는 다양한 성소수자를 묶어 지칭하는 단어다. 21세기 들어서도 퀴어에 대한 오해와 차별은 여전하다. 전 세계의 전쟁과 기아, 인권 탄압과 강력 범죄보다 퀴어를 더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일부 세력들도 남아 있다. 다행히 의료계나 과학계, 전 세계의 좀 더 성숙한 사회에서는 이제 퀴어보다 퀴어 반대 세력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난해부터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 퍼레이드’에 라이더들도 참여해왔다. 다양한 색깔로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rainbow)’에서 이름을 딴 ‘레인보우 라이더스’다. 레인보우 라이더스는 본인의 성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라이더들의 모임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의 선두에 선 데 이어 올해는 60여대의 바이크가 참가했다.
해외의 퀴어 퍼레이드에도 ‘바이크 부대’가 가세하는 경우가 많다. 미리 경찰과의 협의를 거쳐 헬멧 없이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참여가 가능했다. 알록달록한 옷차림과 곳곳의 무지개 깃발, 풍선 덕분에 언뜻 요란해 보이는 레인보우 라이더스의 행진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스쿠터·클래식바이크·스포츠바이크·오프로드바이크까지 다양한 바이크가 경찰의 통제선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마치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게 했다.
올해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역사상 최대 인원인 15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특히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가 광화문광장을 지났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많은 참가자에게는 엄청난 의미였다. 서울에서 가장 열린 공간에서조차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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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라이더스는 내년에도 또 모일 예정이다. 가입 절차나 회원 명단 따위는 없는, 이날 하루를 위해 온라인으로 모이는 라이더들이기 때문에 뜻만 맞는다면 어떤 라이더라도 참여할 수 있다. 물론 기종도 전혀 상관없다. 시청·을지로·광화문 코스를 두 시간에 걸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초저속으로 행진한다는 점, 엔진열이 너무 뜨거운 바이크는 적잖은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만 주의하면 된다. 원래도 라이더 사이의 유대감은 끈끈한 편이지만 이날은 15만명과 하나가 된 듯한 특별한 하루였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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