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는 보통 1981~1996년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미국 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이 세대가 청소년기였던 지난 2001년의 9·11테러를 기억하고 인터넷·모바일기기·소셜미디어가 빠르게 발달하던 시기에 신기술에 적응하면서 자랐다는 것을 이후 세대와 구별되는 점으로 꼽았다. 자기 주관대로 행동하려는 경향과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다는 점을 들어 타임지는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밀레니얼 세대에는 여기에다 조금 슬픈 특성이 더 붙는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지나 저성장·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호황을 누려본 경험이 적은 이 세대는 당장 제 앞가림도 힘든데 나중에 훨씬 더 많은 노인 인구를 부양해야 할 수 있다는 근심을 사고 있다. 우리나라 밀레니얼 세대가 ‘N포 세대’로도 불리는 이유다.
‘워라밸’ ‘욜로’ 같은 몇몇 키워드로 규정되곤 하지만 사실 밀레니얼 세대를 하나의 틀에 가둬놓기란 불가능하다.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 서울경제신문은 3일 1989~1993년생 6명과 만나 그들의 직장생활, 결혼에 대한 생각, 정치관 등 ‘밀레니얼 세대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닉네임을 사용했다.
◇‘직장’보다는 ‘커리어’…“회사는 회사, 나는 나”
△광화문=이제 ‘평생직장’의 개념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커리어(경력)를 내 분야에서 최고로 쌓아보고 싶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해보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직도 굉장히 흔한 일이고요. 직장 중심이 아니라 일 중심인 거죠.
△커피=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정말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얘기 같아요. 대부분은 적당히 자기 상황에 맞는 직장을 찾아 취업하고 살아가는 거죠. 한 직장 안에서 더 높은 지위와 수입을 위해 아등바등 싸우는 일도 예전보다 덜하고요. 친구들도 “난 임원 달 생각 없어, 만년 차장이 인생의 목표야”라고 하는데 공감이 되거든요.
△도토리=저는 사실 ‘커리어 관리’에 대한 생각이 아직 거의 없어요. 취업 준비를 할 때는 ‘어디든 하나만 붙어라’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커리어를 생각할 여력은 없었죠. 다만 그렇다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은 없는 것 같아요. 더 좋은 데가 있으면 이직할 수도 있는 거고.
△자유=예전보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낮아진 것은 맞아요. 신입사원 중에서도 막상 들어오니 본인이 생각했던 회사의 이상, 하고 싶었던 일과 너무 다르다며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부장님들은 그럴수록 “회사가 나고 내가 회사”라며 10년 후 우리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신교육’을 시키려고 하는데, 오히려 저는 거기에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나는 없을 건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워라밸만 따지고 도전정신이 없다?’
△커피= 예전보다 취직은 더 힘든데 퇴사·이직률은 더 높다고들 하잖아요. 그걸 ‘끈기가 없다’거나 ‘고생하기 싫어한다’고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이라면 힘들게 취업했으니 그만큼 기대가 높기 마련인데 ‘내가 이렇게 어렵게 들어왔는데 펀칭이나 하고 있어’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잖아요. 또 이제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기는 아니어서 회사를 내가 키워간다는 자부심도 별로 없고 조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선택권도 거의 없는 것 같고.
△DK=일단 직장을 선택할 때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학교 다닐 때 ‘나에게 어느 직업이 맞을까’를 탐구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입시에 학점 관리에 쫓기다 보면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대기업 가고 보자’가 되는 것 같아요.
△도토리=어떤 기성세대는 지금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이 없고 쉽게 포기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왜 도전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전하면 뭐가 바뀌기는 하나’가 의문이고 도전했을 때 그만큼의 보상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DK=‘20대는 워라밸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일반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세대 중에서도 일에 대한 야망이 큰 사람들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거고. 중요한 건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거죠.
◇결혼하고 아이 낳으라지만…“키워줄 건가”
△자유=결혼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안 낳을 거예요. 친척 어른들이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고 아이 낳으려면 일찍 하라고 하시는 게 너무 싫어 3년 전부터 명절에도 안 가요. 결혼하는 데 뭐 보태줄 건가, 애 낳으면 키워줄 건가. 아무리 회사에서 배려해준다지만 아이 낳고 일하는 여성들을 보면 ‘강철체력’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애 맡길 데가 없어 고생하는 친구들도 많고. 사실 결혼도 한편으로는 남들 시선이 신경 쓰여 해야겠다 싶은 게 있어요. 회사에 여성 고위직은 독신이 대부분인데 그러면 주변에서 ‘저렇게 독하니까 저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식으로 얘기하거든요. 저도 그렇게 보일까 걱정되고, 그런 시선을 받는 게 너무 싫어서요.
△커피=저는 결혼도 굳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집은 어떻게 할 거고, 애는 또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고. 내가 버는 것을 온전하게 내가 쓰고 인생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DK=저도요. 내 삶은 지금 자체로도 재밌고 즐거운데 거기에 결혼이 개입할 여지를 두고 싶지 않아요. 특히 우리나라의 결혼은 저와 상대만 좋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양가 간 결합이니까.
△광화문=저는 결혼은 하고 싶어요. 혼자 지내는 것도 좋지만 어느 시점이 넘어가면 외로울 것 같거든요. 하지만 아이는 잘 모르겠어요. 아이가 생겨 내가 갖게 되는 추가적인 책임감, 의무감을 잘 견딜 수 있을까. 단순히 비용 부담뿐 아니라 내가 살아온 라이프스타일을 포기해야 할 부분도 많을 테니까. 이런 생각에 대해 어른들은 ‘이기적’이라고도 하는데 출산에 대해서는 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DK=이기적이라고 하는 게 이기적인 것 아닌가요.
△자유=개인주의적인 거지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자기 행동에 자기가 책임을 지면 이기적인 게 아니니까요.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니 “사회에 누를 끼치는 일”이라는 말도 들어봤는데 저는 그 말이 이상해요. 제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20대는 진보? 보수? “자꾸 규정 짓는 게 이상해”
△자유=저는 명확한 정치적 색깔이 없어요. 정치 성향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진보가 많은데, 그 친구들도 뚜렷하게 진보 성향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나는 젊으니까 진보야’ 이런 식으로 휩쓸려가는 것 같아요.
△광화문=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사회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스스로 진보라고 밝히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성향 자체는 보수 쪽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는 않아요. 누구나 사안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이슈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양하다고 봐요. 보수 성향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수당을 지지하고, 진보 성향이라고 해서 무조건 진보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이슈에 따라 지지도 달라질 수 있는 거죠.
△DK=동의해요. 저는 저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의 젠더 이슈에 대해 남자가 진보적이기는 쉽지 않잖아요. 본인이 처한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진보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있는 거죠. 옛날처럼 좌파·우파, 운동권·비운동권 이렇게 진영을 나누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봐요.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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