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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코오롱의 침묵, 그 속에 숨은 식약처

박태준 바이오IT부장

코오롱 '인보사 사태' 묵묵부답

환자·가족에 적극 알리는게 도리

식약처도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고백해야 할것 먼저 털어놓아야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웨인 조지프씨는 지난 2006년 유전자 검사를 받는다. 병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것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TV를 시청하던 중 DNA 검사로 선조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광고를 봤던 탓이다. 그는 자신의 피에 아프리카의 혈통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수주일 후에 날라온 검사 결과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도-유럽 혈통 57%, 순수 미국 혈통 39%, 동아시아 혈통 4%, 아프리카 혈통 0%’. 평생 자신을 흑인으로 알고 살았던 50세 남성이 그 결과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최근 미국에서는 DNA 검사를 통한 혈통 확인 서비스가 나름 성업 중이라고 하지만 그 무렵에는 꽤 생소했고 그래서 신문 한 귀퉁이의 외신 한토막이 아주 흥미로웠다.

코오롱이 20년 공을 들여 국내 판매에 성공한 퇴행성 관절염 세포 치료제 ‘인보사’의 성분이 당초 알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황당한’ 소식을 접했을 때 왜 10년도 훨씬 더 지난 그 외신이 떠올랐을까. 아마 ‘자신의 혈통이 무엇인지 평생을 모르고 살았던 미국의 한 남성처럼 코오롱 역시 세포 성분이 뒤바뀐 사실을 정말 몰랐을 것’이라는, 설마 하는 믿음이 있었나 보다.

그런 믿음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대로 깨줬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두 달 동안 인보사를 조사한 식약처가 내린 결론은 ‘코오롱생명과학의 허위자료 제출과 의도적 은폐’였다. 지금 국내외 제약 시장에서 코오롱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사건의 실체는 공을 넘겨받은 검찰 조사로 자세히 드러나겠지만 여전히 석연하지 않은 대목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식약처의 발표대로라면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의 세포 성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이미 품목허가 신청 전에 인지했음에도 서류 조작을 통해 국내 판매를 개시했다. 3,700명이 넘는 환자가 이 주사를 맞았다. 이어 지난해에는 미국과 중국에 1조원이 넘는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고 미국에서는 임상 3상까지 시작했다. 식약처의 ‘자료 조작과 은폐’가 진실이라면 이는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다. 인보사 개발과 판매·임상에 참여한 코오롱 관계자들이 모두 ‘리플리 증후군’이었다고 해야 그나마 납득이 된다.

그런데 코오롱은 침묵하고 있다. 식약처 조사 결과 발표 후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묵묵부답이다. 그 사이 소송에 참여한 주주와 환자들은 수백명에 달하는데 코오롱의 대응은 이우석 대표가 티슈진에서 물러난다는 짤막한 공시뿐이었다.

압수수색으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돼 말을 아껴야 하는 코오롱의 입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임상에서 확인된 인보사의 효과나 무해함을 환자나 가족에게 적극 알리는 것이 의약품을 만드는 기업의 도리 아닐까.

그리고 코오롱의 침묵 속에 식약처가 숨어 있다. 코오롱에 죄가 있다면 식약처는 분명 ‘공범’이다. 식약처는 늘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규제가 우선이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조직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인보사에는 품목 허가를 내줬고 그 과정에도 뭔가 개운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 뒤늦게 허가를 취소하고 투여받은 환자에 대해 추적 관찰을 한다며 ‘뒷북’을 쳤지만 그렇다고 세간의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식약처 역시 코오롱과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고백해야 할 것은 먼저 털어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팔순을 앞두신 어머니가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신 때가 2014년 겨울이다. 수술 후 통증은 물론 재활 과정에서의 고통을 봤던 터라 수년 후 ‘인보사’의 등장이 한편으로는 반갑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수술을 고민하던 그 무렵 그 획기적인 신약이 시장에 나와 있었다면 아마 어머니는 투약을 먼저 선택하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걷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도 힘겨운 고통 속에서 환자들이 수술 전 마지막으로 잡은 지푸라기가 ‘인보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코오롱과 식약처의 침묵 앞에서 그들의 분노가 더욱 커지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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