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융계좌 자동교환협정(FATCA)에 따른 한미 간 교환정보가 서로 달라 불평등조약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통상 국가 간 협약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동일한 것을 교환하거나 동일한 행동을 취하게 되지만 FATCA의 경우 미국의 일방주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한미 간 정보가 일치하도록 FATCA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미 양국이 체결한 FATCA의 내용을 보면 매년 6월 말 각국 정부가 정보를 수집한 뒤 3개월간의 실사 과정을 거친 후 공유하는 방식이다. 한국 정부의 경우 한국 금융기관이 세법상 미국 거주자(미국 영주권·시민권자)에 대한 한국 내 금융정보를 매년 6월 말까지 국세청에 통보하고 국세청은 실사 과정을 거쳐 9월 말까지 미국 정부에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반면 미국 정부는 세법상 한국 거주자들의 미국 내 금융정보를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 미국 국세청인 IRS의 실사 작업을 거쳐 매년 9월 말까지 한국 정부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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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정보 교환하는 한미=문제는 양국 정부가 교환하는 정보가 다르고 대상 계좌도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 정부에 세법상 미국 거주자의 은행별 금융자산(특수관계사 포함) 합계가 5만달러를 초과할 경우 국내 금융기관의 계좌정보와 잔액 등을 알려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세법상 한국 거주자의 미국 내 금융계좌 중 이자가 연간 10달러를 넘는 계좌의 이자 금액만 알려준다. 해당 계좌의 잔액 내용은 빠지게 된다. 우리는 미국에 보고 대상 계좌의 잔액까지 다 알려주는 반면 미국은 우리에게 이자만 알려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자 소득을 통해 미국에 숨겨둔 세법상 한국 거주자의 금융 재산을 추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 정부에 각 금융기관별(특수관계사 포함) 계좌의 잔액이 5만달러를 넘게 되면 해당 계좌의 잔액까지 알려주지만 미국은 한국에 잔액 내역은 주지 않고 이자와 배당 등의 금융 소득만 알려준다”면서 “한미 양국이 교환하는 정보가 비대칭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 당좌계좌는 블랙홀=또 미국 정부는 개인 당좌계좌(checking account)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한미 양국의 협약 내용에 미국 정부는 연간 이자가 10달러를 초과하는 예금 계좌만 한국에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당좌계좌는 미국에서 보편화된 계좌로, 일반 저축성 계좌와 달라 예치금에 대한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수표(check)를 작성해 전기와 가스요금·관리비 등을 납부하는 만큼 거의 모든 미국 거주자는 1개 이상의 개인 당좌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거주자가 미국 당좌계좌에 예치금으로 돈을 넣어둘 경우 미국 정부는 한국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지 않고 한국 정부도 이를 알 수 없게 된다. 앤드루 박 미국 공인회계사(법무법인 동률)는 “한미 양국 간의 협약에 일반 미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체킹 어카운트가 빠져 있어 한국과 미국 정부의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루프홀(편법)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은 이자가 발생하는 예금계좌의 이자만 한국에 통보하는 현재의 협약 내용이 이어진다면 미국이 오히려 편법을 양성화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불평등 알지만 불가피’=우리 정부는 불평등 협약 논란과 관련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우리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직접 압박을 가해 미 정부 대 금융회사 간 1대1로 체결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내용도 우리에게 더 불리했을 뿐 아니라 우리 금융회사들 역시 업무가 더 번거로워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FATCA가 아니라면 한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세법상 한국 거주자의 미국 내 금융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없는 만큼 현재의 협약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미국으로부터 한국 거주자의 금융정보를 받을 방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면서 “한국 국세청이 파악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좁혀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탐사기획팀=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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