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분기 국내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배 가까이 늘어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제조업 해외투자는 2.4배 급증한 58억달러로 역시 사상 최대치였다. 국내 경영환경이 악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의 여파로 해외 기업 인수합병(M&A)과 공장 해외이전이 급증한 결과다. 국내 투자가 고꾸라지는 가운데 해외 투자만 빠르게 늘면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하고 고용과 내수 위축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9년 1·4분기 해외직접투자 동향’을 보면 올 1~3월 해외직접투자액은 141억1,000만달러(송금 기준)로 전년보다 44.9% 급증했다. 지난 1981년 분기별 통계가 작성된 이래 사상 최대 금액이다. 증가율 역시 2017년 1·4분기(62.9%) 이후 8분기 만에 가장 높았다. 해외직접투자는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해외 기업에 투자하거나 해외에 공장을 세우기 위해 나간 금액이다.
제조업 해외투자는 1년 사이 140.2% 급증한 57억9,000만달러를 기록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1%에 달했다. 역시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 해외 투자가 주춤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있지만 노사분쟁 심화, 생산비용 증가, 세금부담 확대 등 국내 투자·경영환경이 나빠진 영향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미래 불확실성이 크고 근로시간·최저임금 등 고용 여건이 경직적으로 돼가는 등 국내 투자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트럼프 압박에 對美투자 2배↑...노조·규제·임금 ‘몸살’ 국내는 외면
지난 2003년 40억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2006년 100억달러, 2007년 200억달러를 돌파한 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에도 해외직접투자액은 전년 대비 11.6% 급증한 497억달러로 2017년 400억달러를 넘어선 지 1년 만에 500억달러에 바짝 다가섰다.
증가세는 올해 들어 더 가팔라지고 있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해외직접투자액은 1년 전보다 44.9% 급증한 141억1,000만달러로 나타났다. 1981년 분기별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다. 그중에서도 제조업 투자액은 무려 140.2% 늘어난 57억9,000만달러로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을 확대하면서 아예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려는 국내 기업들의 투자가 증가한데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력산업 제조업체들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 생산공장을 늘린 것이 주요 원인이다.
실제 미국에 대한 투자액은 36억5,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95.2%나 늘어 국가별 투자액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CJ제일제당이 올 3월 미국 냉동식품 업체 슈완스컴퍼니를 16억8,000만달러에 인수하고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 압박을 피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인수합병(M&A)과 생산설비 증설이 활발하게 이뤄진 결과다. 지난해 1위였던 중국에 대한 투자액도 16억9,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56.1% 대폭 늘어났다.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더 커지고 생산의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해외직접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장도환 기재부 국제경제과장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현지시장 진출을 위한 해외투자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봐도 선진국으로 갈수록 해외투자는 늘어나는 추세여서 앞으로도 해외직접투자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설비투자 1년새 17.4% 급감
자본유출 → 고용 감소 → 경기 부진
구조적 악순환 우려 갈수록 커져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대규모로 늘리는 반면 국내 투자는 줄인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우리나라 설비투자는 1년 전보다 17.4% 감소했다. 지난해 설비투자는 연간 기준 1.6% 감소해 2009년(-7.7%)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 이어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수 부진이 길어지는데다 국내 생산비용 증가, 노사관계 악화, 얽히고설킨 규제 등으로 기업 경영·투자 환경이 나빠지면서 국내보다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은 향후 2년 내 해외시장 진출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진출의 이유로 응답 기업의 절반(50.1%)이 “생산비용 증가, 노사분쟁 등으로 국내 기업 경영환경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경직적인 근무시간 규제와 임금체계, 미진한 규제혁신 등으로 ‘도피성’ 진출을 하려는 기업들이 많다는 얘기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해외직접투자는 세계 각지의 생산설비를 연계하고 해외 생산으로 국내 생산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질 경우 긍정적이지만 부작용도 있다”며 “특히 국내 경영여건이 외국보다 나쁘거나 임금 상승이 과도하면 국내 투자를 포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투자 감소→국내 고용 감소→소비 둔화→경기 부진’의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해외직접투자가 국내에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대(對)현지법인 수출액을 해외투자 잔액으로 나눠 계산한 직접적 수출유발 효과는 2013년 162.9%에서 2017년 117.4%로 감소했다. 과거 저임금 활용 위주의 투자보다 M&A나 현지시장 진출을 위한 투자가 많아지면서 국내 생산·수출 의존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 차원에서라도 어떻게든 해외진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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