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 1.01%(지난해 평균) 수익률로 노후보장 상품에서 노후불안 상품으로 전락한 퇴직연금의 체질 개선이 금융권의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신한금융그룹이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 대수술에 나섰다. 매년 적립금에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수수료를 최대 70%까지 인하하고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경우 누적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경우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기로 했다.
16일 신한금융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그룹사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파격적인 것은 IRP 가입자 계좌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 수수료를 면제해준다는 점이다. IRP는 퇴직급여 이외에도 가입자가 금액을 추가로 적립해 운용할 수 있는 연금으로 개인의 운용 책임이 크다. 퇴직연금 운용에 가장 적극적이고 수익률과 수수료율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객군이라는 점에서 혜택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만 34세 이하 청년과 10년 이상 장기가입 고객에게는 운용·관리 수수료를 최대 20% 할인하고 연금방식으로 수령할 경우 수령기간 수수료를 30% 감면한다. 만 34세 이전에 가입해 10년 이상 연금을 불입하고 노후에 연금방식으로 분할 수령하는 고객은 최대 70%의 감면 효과를 누리게 된다.
확정급여형(DB)·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도 수수료를 인하한다. 총 적립금이 30억원 미만인 기업에는 수수료를 0.02~0.10%포인트 낮춰주며 표준형 DC의 수수료도 일제히 0.10%포인트씩 깎아준다. 또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은 고객사에는 수수료를 절반으로 낮추기로 했다.
이 같은 혜택은 기존 고객에게도 일괄 적용되며 그룹 퇴직연금 적립금의 87%를 운용하는 신한은행에 우선 적용하고 증권·보험 등 계열사에 순차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1위 퇴직연금 브랜드 도약을 목표로 내세운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4월 매트릭스 조직 개편을 추진하면서 내린 첫 번째 주문도 “수익률 마이너스 퇴직연금에서는 한 푼도 수수료를 떼지 말라”는 것이었다. 20~30년 이상 매년 수수료를 떼어가는 구조인 퇴직연금은 수수료율이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당장 수수료를 인하하면 수익률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신한금융이 당긴 수수료 인하 방아쇠는 전 금융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190조원으로 올해 210조원, 내년에는 23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로 이자수익 확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자산관리(WM)·투자은행(IB) 등 비이자수익 제고에 적극 나서는 시중은행들로서는 적립금만 유치해도 수수료가 차곡차곡 쌓이는 그야말로 금맥인 셈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논의하고 있는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이 열릴 경우 신규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자 선정의 기준이 되는 수익률 관리는 필수다. 신한에 이어 KB 등 주요 금융지주들이 그룹 차원의 퇴직연금 경쟁력 제고에 나서는 이유다.
그룹사를 등에 업은 삼성 계열 금융사들이 총 적립금 31조9,278억원으로 독보적인 1위 사업자 지위를 수성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지주사들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말 기준 21조8,103억원으로 은행계에서는 1위지만 KB(21조4,014억원)가 바짝 뒤쫓고 있다. 신한 내에서는 이번 수수료율 인하 실험이 2위 사업자와의 격차를 크게 벌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상품의 특성상 입사부터 퇴직 때까지 최소 20년 이상 장기간 계약을 이어가는 상품으로 WM사업 확대에 나선 은행들로서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가장 중요한 예비고객군에 해당한다”며 “특히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세가 매년 두자릿수를 유지할 정도로 가파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사들이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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