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수수료 등 거래 비용만 수천억원을 낭비해온 것은 그만큼 비용 최소화에 무관심했다는 의미다. 변동성이 높은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내기가 쉽지 않아 비용이라도 절감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조차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가 국내 기관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기보다는 증권 거래 체계에 경쟁이 도입되지 않아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단순히 무지를 원인으로 돌리기에는 그 손실이 큰 만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래 비용 최소화에 익숙하지 못한 국내 기관이 해외 거래 시에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근본 원인은 ‘거래 체계’의 차이다. 한국의 주식거래 체계가 독점 구조여서 투자자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거래가 체결되도록 하는 ‘최선집행의무’에 둔감해도 문제가 없었던 탓이다. 반면 대체거래소(ATS)가 지난 1990년대부터 발달한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은 복수의 거래소에서 증권 거래가 이뤄지며 다수의 브로커가 ‘큰손’인 기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수수료 혜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익숙하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비용 절감에 더욱 민감해졌다고 한다.
대체 거래소는 정식 거래소는 아니지만 매매 당사자 사이에서 거래를 체결하는 거래소의 기능을 한다. 투자자로서는 같은 주식을 거래소와 ATS 양쪽에서 모두 거래할 수 있다면 비용이 더 낮고, 거래 체결 시간이 짧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을 선택할 수 있다.
실제 지난 2005년 미국 캔자스에 설립된 대체 거래소인 BATS(Better Alternative Trading System)는 그동안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이 과점해온 미국 주식시장에 경쟁과 혁신을 불러왔다는 평가가 많다. 이미 2015년 ‘월가’의 상징인 NYSE에서 거래되는 주식 비중은 23.8%, 나스닥은 17.9%에 불과하다. 그 사이 BATS는 설립 10년 만에 점유율을 21.2%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BATS는 2008년 유럽에 진출해 점유율 22.93%(2016년 현재)로 유럽 최대 거래소로 성장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타 거래 채널(venues)’의 점유율이 23.9%로 BATS보다 높다는 점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증권거래소는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기술 기업으로 진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기업공개(IPO) 같은 전통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가벼운 거래소’도 여럿 생겨나고 있다. 이런 환경을 기반으로 과거의 주식 브로커는 ‘다자간매매체결회사’로 발전했다. 호주의 ‘리퀴드넷’은 대표적인 다자간매매체결회사로 연간 100조원에 달하는 거래를 체결시키지만 직원은 40명에 불과하다.
후진적 거래 체계로는 선진 거래 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인의 ‘횡포’에 앉아서 당할 공산이 다분하다. 실제 경쟁적 거래 체계와 거래 비용 최소화 움직임은 최근 국내에서도 비중을 높여가는 알고리즘 매매와 고빈도 매매(HFT)의 진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을 교란한 의혹으로 한국거래소가 제재를 논의 중인 미국 시타델증권처럼 고빈도 매매가 발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장근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충격비용을 최소화하고 시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 알고리즘 매매”라며 “이를 1,000분의1초 단위로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컴퓨터에 의해 거래가 이뤄지도록 발전한 것이 고빈도 매매”라고 설명했다.
거래 체계에 대한 경쟁 도입은 금융투자업계에 새로운 먹거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남길남 자본연 연구위원은 “전통적 수익 부문의 침체로 증권사들의 비용 절감 압박은 매매 체결 비용의 감축 시도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주문의 내부 체결을 모색하거나 별도의 ATS 설립 유인이 커질 수 있다”며 “대안적 모델로 미국과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대형 거래소 그룹의 자회사로 ATS를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양준·김광수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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