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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붕괴]금융위기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없었다

■붕괴(CRASHED)

애덤 투즈 지음, 아카넷 펴냄

美·유럽, 금융시스템 구제 위해

천문학적인 돈 쏟아붓고 복지 축소

고통커진 대중, 기존 지도자 불신

포퓰리즘 정치 득세에 위기 안끝나

"亞국가 중 가장 큰 위기 겪은 韓

모든 성취 불구 선택 기로에" 우려도







‘2008년 9월 16일 화요일은 이른바 “리먼브라더스 사태 다음 날”이었다. 이날 전 세계 글로벌 화폐시장들이 멈춰 섰다.’

96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158년 역사의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을 선언하고, 굴지의 투자은행(IB)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된 것은 ‘투자은행의 침몰’ 정도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지난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파국을 몰고 온 글로벌 금융위기의 서막이었다.

현대 경제사의 거장으로 부상한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간의 각국 경제와 정치 변화를 살펴봤다. 투즈 교수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국제질서를 인상적으로 그린 2014년작 ‘대재앙’으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붕괴’에 담긴 그의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2008년 금융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다.



저자는 ‘대공황은 히틀러를 낳았고 금융위기 10년은 트럼프를 낳았다’고 이야기한다. 위기 대응을 위해 시행된 ‘포퓰리즘’ 정치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전의 세계 경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된 ‘대(大)안정기’를 보내던 중이었다. 이는 유례없는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하룻밤 새 무너졌고 경제적 사건이 정치적 위기로 변모했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당장 문제를 일으킨 금융 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일종의 구제금융이었다. 그 배경에는 은행과 채권자에 유리한 금융 방식이 추진됐다. 대중의 생활 수준 하락과 삶의 고통 가중, 재정 긴축에 따른 복지 프로그램 축소가 진행됐다. 대중은 자신의 삶이 나빠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기존 정치 지도자들을 불신하면서 ‘정치적 이단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대공황 때의 히틀러와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은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분위기를 부추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은 10년 전 금융위기의 진앙인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신흥시장 국가까지 파고들어 지역적 차원의 대응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유럽연합(EU)의 대응은 다소 비겁했다. 유럽은 “만기연장이 곧 경기회복의 전략”이라는 식으로 위기를 유예하는 것을 대응책으로 삼았다. 이는 과감한 양적완화를 시행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한 미국과 비교된다. 책은 이 같은 EU의 위기 대응 실패가 일부 지도적 국가나 정파의 이익에 좌우된 결정이었음을 폭로한다. 독일이 그리스의 정권 교체에 깊숙이 개입해 “베를린의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미국보다 정권교체를 더 잘 해낸다’는 자랑 섞인 이야기가 나돌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한국도 유심히 들여다봤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큰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금융시스템이 고도로 국제화된 것이 되레 원인이 된 셈이다. 한국은 국제 화폐 시장에 자금 조달의 의존도가 높기도 했지만 국내외 금리차를 이용한 투자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과 300억 달러에 이르는 통화 스와프 체결이 위기 해소에 마중물이 됐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은 변하지 않는 불안 요소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성취에도 불구하고 극명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점점 더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미국, 부상하고 있는 중국, 공격적이고 위협적 태도로 일관하는 러시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유럽까지” 거론하면서 “(이 책을 통해)국제 질서가 어느 날 갑자기 흔들릴 수도 있는 작금의 세계 상황에서 스스로 갈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얻었으면”하는 바람을 밝혔다. 3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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