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보상비 지급은 두 단체(서울시·조합)의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조속히 지급되는 것이 정당합니다. 공모 참여업체의 대가를 볼모로 잡는 일은 납득 될 수 없습니다.”
잠실5단지 국제설계공모에 지명설계자로 참여한 네덜란드의 ‘VDK’와 프랑스의 ‘투 포잠박(2portzamparc)’은 최근 서울시와 조합에 보낸 공모비 지급독촉 이메일에서 이같이 밝혔다. 세계적인 건축사 사무소인 이들 업체들은 서울시가 대행한 설계공모에 참가했지만 1년 넘게 공모비를 지급 받지 못하고 있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공모지침서에는 참가자에게 공모보상비 5,000만 원을 시상식 이후 30일 이내 지급한다고 돼 있다. 지난해 4월 최종 심사 결과가 공개 됐지만 현재까지 1년이 넘도록 설계비를 지급 받지 못하다 보니 공식항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국제설계 공모비 미지급은 무엇보다 시가 주공 5단지 재건축 사업을 사실상 중단시킨 것이 근본 원인이다.
◇ 표류하는 재건축, 서울시·조합 핑퐁= 해외 업체 뿐 아니라 국내 업체도 공모비를 지급해 달라며 적극 행동에 나섰다. 최근 행림건축사사무소도 조합에 공문을 보내 공모 보상비 5,000만 원을 청구했다. 행림 측은 “국제설계 공모안 작성을 위해 인원투입, 협력업체 외주비용, 성과물 작성, CG 등 실 투입 비용만 약 4억 원”이라며 공모 보상비 처리를 통해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선자인 조성룡 건축가를 포함해 7개 참가팀은 물론 이와 연계된 수많은 협력업체까지 1년 넘게 대금을 못 받고 있는 상태다. VDK와 투 포잠박 측은 외교적 접근까지 검토했으나 일단 공동 대응한 뒤 상황을 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주공 5단지 재건축 사업이 표류하면서 해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박원순 서울시 시장은 최근 잠실주공 5단지와 은마 등 강남권 재건축 사업을 불허 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기도 했다. 조합 측은 여전히 수권소위 통과 후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고, 서울시는 대금 지금은 조합의 몫일 뿐이라며 버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수권소위를 열어 잠실5단지 재건축 사업을 굳이 서두를 것 없다는 눈치다.
◇“누가 서울시 주관 설계공모 지원하겠나”=책임지는 사람 없이 설계비 지급은 차일피일 미뤄지다 보니 업계에서 실망감이 커가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서울시가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공개한 ‘도시·건축 혁신안’에 따르면 향후 정비계획을 시작하는 사업지들은 모두 시에서 현상설계 공모를 지원하기로 했다. 국제설계공모는 최대 5억 원, 국내 설계공모는 1억 원 정도로 시에서 공모비 지원한 계획이다.
이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를 비롯한 4곳이 시범사업지로 선정해 하반기 조례 제정과 함께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 잠실5단지 국제공모와 같은 전례 탓에 제대로 된 공모가 이뤄질 지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한 건축설계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설계공모를 이렇게 운영하는데 세계적인 건축가는 물론 국내 유명 건축가가 과연 참여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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