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93.1%가 이미 우리 경제가 침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반기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10개 기업 중 6개 기업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울한 경기전망은 신규 투자와 고용에 직격탄이 되고 대부분의 기업은 하반기 경영계획에 투자와 고용을 제외했다.
1일 서울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 조사한 하반기 경영현황 설문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6.9%가 하반기 경영환경이 상반기보다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한 비율도 36.3%를 차지해 전반적으로 비관론이 우세했다. 반면 상반기보다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은 6.8%에 그쳤다. 특히 자동차와 유통 업종을 제외하고 개선될 것이라고 응답한 업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국내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매출 1조원 이상 10조원 미만 기업들 모두 하반기 국내 경제가 상반기 수준에 머물거나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냐’는 질문에는 77.2%가 대체적으로 동의했으며 15.8%가 전적으로 동의해 대부분 기업에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경기 비관론은 고스란히 투자 및 고용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응답 기업의 65%가 설비투자 규모를 상반기와 비슷할 것이라 답했으며 상반기 대비 축소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도 9.5%를 차지했다. 특히 최근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유·석유화학 업체들은 80%가 상반기와 동일한 수준의 투자를, 20%가 상반기 대비 1~5%가량 투자 규모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최근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출시로 투자 확대가 필요한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은 응답 기업의 33.3%가 상반기 대비 6~10%가량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답했지만 고용을 늘리겠다는 기업은 없어 눈길을 끌었다. 자본 규모 10조원 이상의 기업 중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이 한 군데도 없어 각종 규제 및 무역분쟁에 따른 불확실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 대기업일수록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빠지는 경제 때문에 신규 고용 확대도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 고용 규모가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응답이 66.7%를 차지했으며 줄이겠다는 응답도 6.2%를 차지했다. 채용과 관련해서는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보다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매출 1조원 미만 기업의 75%가 채용을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 답했으며 12.5%는 채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또 종업원 수 1,000명 미만 기업 중 78.9%가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10.5%는 채용 규모를 상반기 대비 11% 이상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의 고용정책이 소규모 기업에 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정유·석유화학 기업의 25%가 채용을 줄일 것이라 답했으며 건설업 또한 20%가 채용 규모를 줄일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실적 전망도 암울하다. 상반기 대비 영업이익이 같거나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이 45%에 달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마진 축소가 우려되는 금융 업종 중 40%가 상반기 대비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으며 정제마진 및 화학기초제품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유·석유화학 업종 또한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40%에 달했다. 특히 최근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기·전자 부문은 영업이익이 11%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20%에 달해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하반기 경영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에 61.4%가 ‘수익성 향상’을 첫손에 꼽았다. 이어 매출 증대(16.8%), 비상경영체제 유지(14.9%), 신사업 진출(5.0%) 순이었다.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에 나서기보다는 보수적 경영을 통해 외형 유지 등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설문 대상 5곳의 정유·석유화학 업종 기업 모두가 ‘수익성 향상’을 첫손에 꼽았으며 금융(80%), 건설(75%), 유통(70%) 등도 관련 항목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는다고 답했다. 경기민감 업종일수록 신규 사업 진출과 같은 공격적 전략보다는 수익성 확보라는 비교적 보수적 전략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올 하반기 한국 경제에 부담을 줄 요인으로는 수출경기 둔화(18.9%), 투자 위축(16.8%),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16.3%), 민간경제심리 악화(12.1%), 소비 부진(12.1%) 순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다양한 불안 요소가 상존해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코오롱 ‘인보사 파문’ 등으로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바이오·제약 업계는 42.9%가 투자 위축을 가장 첫손에 꼽아 눈길을 끌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 초반대가 될 것이라는 응답이 59.8%를 차지해 현대경제연구원(2.5%) 등 국내외 전문기관의 예측치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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