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제시하는 성장률 전망은 겉보기에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에는 많은 함의가 내포돼 있습니다. 단순한 통계적 기법뿐 아니라 정부 부처의 수장과 한은 총재의 정무적 판단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통계 마사지’ 좋게 말하면 통계적 기법이 잡아내지 못하는 감각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 밖에 정치적 판단까지 고려합니다. 그 의미를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18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올해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0.2%)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 것입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도 1.75%에서 1.5%로 전격 인하했습니다. 다음달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뒤집은 것이지요. 한은이 금리를 내린 것은 2016년 6월 이후 3년1개월 만입니다.
한은의 성장률 전망은 정부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낮습니다. 정부는 최근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2.7%에서 2.4~2.5%로 낮췄습니다. 한은의 전망치가 통상 정부보다 0.1%포인트 낮은 점을 감안하면 정부보다 0.2%포인트 낮게 설정한 한은의 수정 전망치는 우리 경제가 ‘중병’에 걸렸다는 점을 한은이 인식했다는 방증입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낙관론에 젖어있던 한은이 뒤늦게 정신차린 셈입니다. 한 경제전문가는 “민간에서는 올해 초부터 우리 경제가 2%대 초반의 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한은과 정부만 ‘상저하고’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져있었다. 무려 2,000명의 직원을 보유한 한은보다 이코노미스트 몇명이 모여서 뚝딱뚝딱 만든 전망이 더 장확했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통계적 기법이야 다 거기서 거깁니다. 차이는 경제를 바라보다는 감각의 차이이지요. 현실감 ‘제로’여서 ‘절간’이라는 별명까지 보유한 한은이니 현실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가 이제야 조금 깨달은 것입니다. 책상머리 경제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지요
하지만 한은의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한은은 통상 정부의 추경 효과를 전망에 반영하지 않습니다. 국회 통과가 불확실하고 통과되더라도 언제 통과되느냐에 따라, 또 정부안이 얼마나 수정되느냐에 따라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은은 이번에 이례적으로 추경효과를 반영해 2.2%라는 숫자를 내밀었습니다. 한마디라 성장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성장률 전망을 할 때마다 추경을 반영했다가 안 했다가 오락가락하니 한은의 성장률 전망을 누가 믿겠습니까. 한마디로 한은이 제시한 2.2%라는 숫자에는 이주열 총재의 의지가 반영돼 있는 것입니다. 최대한 숫자를 높이겠다는 의지이지요. 글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가지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겠지요.
한은의 깜짝스런 금리인하도 사실은 한은의 뒷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한은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음달(8월) 금리인상 신호를 강하게 보냈습니다. 금리를 인하하겠지만 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말함으로써 적어도 이달(7월)은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했지요. 시장도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한 경제전문가는 “통상 한은은 시장에 충분한 신호를 준 뒤 행동에 옮긴다”며 “다음달로 점쳐졌던 인하시기를 갑작스레 한 달 앞당긴 것은 우리 경제가 자칫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변수가 터지긴 했지만 한은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무디다는 얘기입니다. 시장에 신호를 주지도 못한채 금리를 깜짝 인하했으니 앞으로 누가 한은을 믿겠습니까. 이주열 총재가 그렇게 강조했던 의사소통의 실패인 셈입니다.
한은의 뒷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선 인적구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은 직원 대부분은 서울대,연고대 등 명문대 출신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공채출신이지요. 정년이 보장됩니다. 안정적이지요. 사회생활을 한은에서 시작에서 한은에서 마감하니 현실감각 제로입니다. 그리고 숫자에 집착하지요. 경제를 책으로만 배웠으니 우리 주위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일반 직장인들은 경제가 안 좋아지면 회사 분위기나 성과급, 거래처 등을 통해 경제상황을 바로바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고정적인 월급을 받고, 마주하는 상대가 은행들이다 보니 현실감각이 떨어집니다. 거기다 정무적 감각은 전혀 없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니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세장 돌아가는 것을 조금 알만한 경력 직원은 거의 없습니다. 순혈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지요. 한은이 뒤늦게 경제현실을 깨닫고 내놓은 2.2%라는 숫자에서 한은이라는 조직의 특성까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2.4~2.5%라는 성장률의 의미를 보겠습니다. 정부 공무원 누구도 우리 경제가 올해 2.4%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조차도 내심으로는 말도 안되는 수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2.4~2.5를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짐작해본다면...우선 내년 세수전망을 들 수 있습니다.
성장률을 너무 낮게 하면 내년 세수전망도 낮출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일자리 정책 실패로 여기저기 돈 쓸 곳 많은 정부의 지출도 줄어들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그러면 ‘빚을 너무 많이 낸다’는 재정건전성 논란에휩싸일 수 있습니다.
세수전망을 부풀리기 위해서라도 성장률을 높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성장률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도 담겨 있습니다. 추경과 재정 조기집행, 규제혁신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추경의 효과는 이미 물건너갔습니다. 지금이 7월인데, 바로 오늘 추경이 통과된다하더라도 실제 집행되는 데는 몇개월이 걸리지요. 그럼 연말입니다. 연말에 돈 좀 더 쓴다고 성장률이 올라가봤자 얼마나 올라갈까요. 지금이 7월이니 재정 조기집행은 성립조차 하지 않고, 규제혁신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성장률 가이드로 2.5 안팎을 제시했지요. 기재부 공무원들은 내심 말도 안되는 숫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대통령의 말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너무 낮은 성장률을 제시해 경제심리를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은이 제시한 성장률 2.2%와 정부가 제시한 성장률 2.4~2.5% 둘다 믿을 만 하지 않습니다. 통계마사지가 너무나 많이 들어간 낙관적인 숫자이니까요. 이제 국민들은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2% 안팎의 저성장국면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각자 살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부 믿지 마세요.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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