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무대 위 화려한 조명은 가수에게로 모인다. 하지만 관객들의 눈길을 받지도 못한 채 가수를 빛내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수의 라이브 공연이나 앨범 녹음을 도와주는 악기 연주자 ‘세션’이다. 이들은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자악기에 점차 밀려나면서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외주 세션 일자리를 얻으려면 부단한 연습과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수다. 의뢰인이 원하는 스타일로 언제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어야 하고 처음 만나는 다른 연주자들하고도 단번에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은 이들의 음악성에 주목한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잇달아 나오고 유튜브라는 팬들과 새로운 소통창구가 생기면서 숨통을 트여주고 있다. 스스로 “돕는 사람”이라 정의하는 무대 뒤의 주인공 세션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열악한 세션 시장…갈 곳 잃는 연주자들= 콘서트와 음반 녹음에 필요한 악기 연주가 전자음악으로 대체되면서 세션들이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우선 10년 전부터 대학 실용음악과가 급증하면서 실력 있는 연주자가 시장에 넘쳐난다. 한국교육개발원 국가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실용음악전공 대학 졸업생은 2017년에만 2,400명에 이른다. 경력 쌓기가 시급한 젊은 연주자들은 회당 불과 7만~10만원을 받고 클럽 공연에 나선다. 보수가 상대적으로 비싼 고참 연주자가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경기도 소재의 한 실용음악학원 강사는 “녹음 보수가 몇 년째 오르지 않고 있는데 일거리도 줄고 있다”며 “세션 일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상황이라 ‘세션 맨’이 장래 꿈인 학생이 있으면 말리고 싶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세션 맨’들은 학원 강사나 개인 레슨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연주자들의 대중문화예술활동 관련 월평균 소득은 102만9,000원에 그쳤다. 2016년 최저임금 기준 월급인 126만원에도 못 미친다. 부업까지 포함해도 월평균 소득은 173만9,000원에 불과했다.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유명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을 해온 한 연주자는 “음악감독이 바뀌면서 한순간에 모든 연주자가 교체된 적도 있다”며 “프로답지 못할까 봐 아쉬운 내색도 할 수 없는 게 업계 분위기”라고 말했다. 함께 음악을 만들었지만 공연 중에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은 적도 있다고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7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음악감독이 장기 공연 중 세션의 임금 일부를 몰래 가로채다 탄로 나 공연이 중단되고 실직한 사례도 있다.
세션업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섭외되는 구조로 진입 장벽도 높다. 처음 프로젝트를 맡았거나 가장 연장자인 연주자가 ‘밴드 마스터’로 서고, 그가 필요한 연주자를 섭외하는 방식으로 구인·구직이 이뤄진다. 이 때문에 연주 외에도 두루두루 자신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한 세션 연주자는 “업계 관계자들을 많이 알고 있지 않으면 첫발 들이거나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대학생 때부터 선배들의 연주나 녹음을 도와주면서 인지도를 오랫동안 쌓아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스타일도 소화해야 하는 만능 재주꾼= 세션 연주자로 살아가면서 얻는 장점도 많다. 개인적 차원이었다면 서기 어려운 무대에서 연주해보기도 하고, 자신의 음악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연주해보는 과정에서 실력이나 음악적 측면에서 성장할 수 있다. 이수혁 퍼커션 연주자는 가수 이문세와 함께 작업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동경해온 아티스트의 음악에 이바지할 때 정말 행복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듀오 그룹 ‘싱크로니시티’ 안동욱 기타리스트는 “큰 무대나 다양한 음악 스타일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이라며 세션 병행 이유를 설명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진 못하더라도 가수의 팬들이 기억해주는 경우도 있다. 자우림, 정용화 등과 함께 연주한 염성길 드럼연주자는 “아이돌 세션으로 있을 때 팬들이 세션 얼굴까지 그려진 텀블러를 들고 있었다”면서 “무대에 오르기 전 한 가수 팬이 연주를 잘 부탁한다고 말할 때 기뻤다. 똑같은 돈을 받고 일하지만 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들은 좋은 세션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본인의 음악이 아닌 만큼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염 드럼연주자는 20대 초반 하루도 빠짐없이 8시간 이상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는 “연습만큼 연주 폭을 넓히는 방법이 없다”며 “그래야 고객들이 더 많이 찾아준다”고 말했다. 권병호 멀티악기 연주자도 “연주에 성공한 악기가 20개면 실패한 악기는 30개가 되는 거 같다”며 “다양한 악기를 연마하기 위해 며칠 동안 외출도 안 하고 연습에 매진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가지가 넘는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KBS ‘불후의 명곡’, MBC ‘나는 가수다’에서 연주를 맡았다.
세션들의 꿈은 ‘A급’으로 업계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럼연주자 강수호처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과 라이브 연주실력을 보유해 인정받은 연주자들을 말한다. ‘A급’ 세션의 경우 3시간 30분 녹음에 대략 30만~50만원을 받으며 콘서트나 앨범 녹음 등의 의뢰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들어온다.
◇밴드 열풍이 세션의 돌파구 되나= 최근 고만고만한 가수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이 식상해지면서 밴드 오디션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여러모로 열악한 세션 연주자들에게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지난 12일 종영한 JTBC의 ‘슈퍼밴드’는 악기 연주자 개개인에 주목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컬 중심이었다면 ‘슈퍼밴드’는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신선한 재미를 줬다. 2011~2015년에는 KBS가 ‘탑밴드’가 방영했고 2011년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에서는 유명 세션들을 한자리에 모아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지난 13일 성황리에 종료된 가수 박효신 콘서트에서도 세션들이 전면에 나왔다. 움직이는 세트 위에서 연주되는 기타, 베이스, 키보드는 보이는 음악이 돼 관객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상황에 걸맞은 즉흥 연주로 흥을 돋을 수 있고 현장감을 생생하게 높일 수 있는 것도 녹음된 전자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장점이다. ‘슈퍼밴드’의 프로듀서를 맡은 가수 윤종신은 “수많은 실용음악과에서 학생을 선발하는데 스타는 가수만 나오지 않느냐”며 “밴드가 살면 낙원상가와 악기 회사, 음악 업계와 공연시장이 살아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팀을 이룬 밴드와 외주 음악가인 세션을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션 업계에서는 가수가 아닌 연주가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밴드 프로그램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등의 악기를 전자음악이 아닌 직접 손으로 연주하는 세션의 매력이 밴드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페스티벌은 꾸준히 늘고, 음원 녹음이 전보다 쉬워진 것도 세션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유튜브 등장이 세션들에게 새로운 활로가 될 지도 주목된다. 요즘에는 뛰어난 실력의 세션이 악기 판매사의 협찬을 받아 유튜브에 악기 연주 영상을 올리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권 연주자는 “음악은 결국 돌고 도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전자음악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사람 연주를 그리워하는 시기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황이현 기타리스트도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이유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기만의 음악 스타일을 고집하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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