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3월 문화재청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임진왜란 때 사용됐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864호로 지정된 청동 징(金鼓)이 사실은 1960년대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1990년대 초 우연히 박물관에 갔다가 이 유물을 봤다고 했다. 당시에 바로 문제를 제기하려 했으나, 고초를 겪을지 모른다는 주위의 만류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80세를 넘긴 고령에,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인 그는 본인이 죽기 전에 이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편지에서 당부했다.
조사결과, 문제의 징은 1985년 과학기술문화재조사 시 각종 무기들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었다. 징 옆면에는 ‘삼도대중군사령선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용한 쇠북으로, 만력14년 병술년(1586) 3월에 제작됐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추가 조사한 결과 이 글씨는 위조범이 새긴 것이었다. 훗날 이 유물은 박물관에 팔렸고 보물로까지 지정되었던 것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은 1593년 이순신장군때 처음 등장했고, 삼도대중군사령이란 말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것이니 1586년에는 있을 수도 없는 명칭이었다. 성분분석과 제작기법 등 가능한 모든 정밀조사를 거쳐 결국 청동 징은 보물에서 해제됐다. 글씨를 새겨 진품으로 위조한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왜란때 왜군을 벌벌 떨게 해 일명 ‘귀신폭탄’으로 불렸다는 비격진천뢰(보물 제860호)는 지난해 고창에서 11점이나 더 발굴돼 지금 국립진주박물관에 8월 25일까지 특별전시중이니, 휴가철에 한번 들러 보는 것은 어떨까?
/이은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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