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악화로 소비자들의 ‘노 재팬’ 운동이 확산하면서 국내 항공사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노선 감편을 검토한다고 하지만 섣불리 감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편 결정 이후 적용되는 데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자칫 상황이 급변할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항공사들은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번 기회에 수익성 개선을 위해 노선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에어서울은 최근 ‘노 재팬’ 운동이 확산하면서 일본 노선 감편과 일부 노선의 운항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에어서울의 한 관계자는 “신규 일본여행 수요가 둔화하고 있으며 (현 상황이 계속되면) 다음달 말부터는 신규 예약자가 예년에 비해 심하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일본 노선이 많아서 어떻게 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불매 운동 등으로 예약률이 떨어지는 상황이지만 일본 노선의 운항 중단 등을 바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 노선의 취항과 운항 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도쿄 하네다 노선을 제외하고는 운수권에 제한이 없는 항공자유화지역이다. 이 때문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지금까지 국내 지방 도시와 일본 지방 공항 간 취항을 급격하게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운항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규정상 45일 전 우리 정부와 일본에 신고를 하고 인가를 받아야 한다. 9월 초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면 적어도 7월 중순에는 신고를 했어야 했다. 최근 운항 중단을 결정한 항공사들의 경우 예전부터 수요가 적은 노선에 대한 운항중단을 검토해왔고 일본의 수출 제한 조처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인가를 받은 후 한일 관계가 갑자기 좋아지게 되면 항공사 입장에서는 운항 중단의 의미가 없어진다. 또 중단된 노선을 다시 복원해야 할 경우 일본 지방 공항과의 관계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항공사가 감편이나 운항 중단을 갑작스럽게 시행할 수는 없다”며 “(결정에서 적용하기까지) 짧은 시간이 아닌 만큼 그 사이 상황이 급하게 바뀔 수도 있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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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에서는 이번 ‘노 재팬’ 운동이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하고 확산된 만큼 한일 관계가 개선된다더라도 일본여행 수요가 다시 예전처럼 빠르게 복원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항공사들은 공급 과잉 양상이 큰 일본 노선을 줄이는 대신 여유가 생긴 항공기를 중국이나 동남아 등 다른 노선에 투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노 재팬’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본 노선은 공급 과잉 상태여서 조정이 필요했다”며 “상반기 중국 신규 운수권을 배분받은 것도 있는 만큼 일본 운항 항공기를 중국에 투입하는 등 다양한 노선 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여행 신규 수요는 휴가철이 마무리되면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을 것으로 내다봤던 대형항공사(FSC)도 수요 감소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월 일본 노선 예약률이 3%포인트, 8월과 9월은 2%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도 다음달부터 일본 일부 노선을 소형기로 바꾸는 등 기재변경을 통한 공급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한 LCC의 경우 이달 일본행 항공기의 탑승률은 변화가 없지만 예약 위임률은 예년보다 20%가량 줄어든 상황이며 FSC도 오키나와와 삿포로 등 여름 인기 관광 노선을 중심으로 수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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