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격적인 무역보복 조치로 촉발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의약품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진출한 일본 제약사 매출의 대부분을 전문의약품이 차지하고 있어 불매운동에 따른 타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전라북도약사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일본 의약품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주요 약사단체 중 공식적으로 일본 불매운동에 뛰어든 것은 전북약사회가 처음이다. 서용훈 전북약사회장은 “일본 정부를 향한 경고이자 압박 차원에서 불매운동을 시작했다”며 “일선 약국을 찾는 환자들에게 가급적 일본산 대신 국산 의약품을 권해드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정세윤 약사도 일본 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의약품을 잇따라 소개하며 일본 의약품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일본 다케다제약의 종합감기약 ‘화이투벤’ 대신 ‘씨콜드(대웅제약)’나 ‘파워콜(동화약품)’을 선택하라고 조언하는 식이다. 비타민제 ‘액티넘’, 구내염 치료제 ‘알보칠’, 소염진통제 ‘멘소래담’ 등이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대표적 일본 의약품이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일본 의약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하더라도 일본 제약사가 입을 타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본 제약사가 국내에서 거두는 매출의 98% 이상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산 일반의약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한 관계자는 “전문의약품은 만일의 경우 환자의 생명에 위협을 끼칠 수 있기에 의료진 입장에서는 쉽게 의약품을 변경하기 어렵다”며 “전문의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일본 제약사들도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의약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오히려 국내 제약사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 제약사 대다수가 종합병원에는 의약품을 직접 납품하지만 중소형 병원에는 국내 제약사에 판매를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의약품의 매출이 감소하면 국내 제약사의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일본 제약사는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 제약사 중 공시 의무가 있는 상위 10개사(아스텔라스·다케다·에자이·오츠카·다이이찌산쿄·산텐·쿄와하코기린·미쓰비시다나베·오노·코와)는 지난해 국내에서 전년보다 11.9% 늘어난 1조2,9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일본 제약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5.3%에서 5.6%로 늘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국산 의약품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일본은 단일 국가로 미국과 중국에 이은 글로벌 3위 의약품 강국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10%에 이른다. 반면 한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글로벌 13위 수준에 점유율은 1.8%에 불과하다.
매출액 기준 글로벌 톱 50 제약사에도 일본 제약사 10곳이 포진해 있지만 한국은 전무한 실정이다.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도 글로벌 70위 수준이지만 일본 1위 다케다는 글로벌 8위의 초대형 제약사로 탈바꿈했다. 바이오벤처기업 숫자에서도 일본은 2,000곳이 넘지만 한국은 1,000여곳에 불과하다. 한국이 그간 반도체·자동차·중공업·조선 등 여러 산업군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좁혔거나 경쟁 우위에 올라섰지만 유독 제약산업에서는 일본에 비해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한국보다 인구가 2.5배가량 많지만 글로벌 의약품 경쟁력에서는 5배 이상 차이를 벌리고 있다”며 “단순한 일본 의약품 불매운동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국산 의약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릴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