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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주력산업 약화 원인은 혁신 부족…지식력 강화서 돌파구 찾아야"

■박재윤 전 통상산업부 장관

정부서 연수·교육 프로그램 마련해 협력·창의력 육성

신산업 분야 사전규제 모두 없애 기업 R&D투자 도울 때

한국사회 극단주의 매몰된 탓 협치 안돼…與부터 바뀌길

박재윤 전 통상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신산업 분야에 사전 규제가 많으면 누가 투자해 신기술을 개발하려고 하겠나”라면서 “신산업 분야에서만큼은 사후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규제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우리나라가 10년 내에 중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중진국 함정에 갇힙니다. 지난 1960년대 초 26개 중진국 중 영국에서 독립해 선진국으로 올라선 아일랜드, 2차대전 이전의 선진국으로 복귀한 일본을 제외하면 사실상 싱가포르만 도약에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무엇보다 국민들의 지식력(정보력·창의력·협력력)을 강화하는 범국민적인 새 시민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박재윤 전 통상산업부 장관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지식력 강화를 제시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지식력 중에서도 창의력과 협력력이 매우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교육기관에 창의력과 협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도입·정착시키되 동시에 사회에서도 연수프로그램 등을 통해 국민적인 지식력 향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진국 함정’의 시한이 임박한 상황이어서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사회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에 발탁돼 경제수석, 재무부 장관, 통상산업부 장관 등을 지내며 신경제를 주도한 그를 장마 끝 무렵인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서울경제신문 16층 회의실에서 2시간가량 인터뷰했다.



-대학을 떠난 뒤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신 것 같은데.

△미국 일리노이기술대학원과 유타대에서 교환교수로 각각 1년, 5년을 보내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이론을 토대로 미국이 왜 강한지에 대한 연구를 해 ‘혁신지식-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9가지 지혜’를 썼다. 귀국한 후 이 저서를 활용해 기업체와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많은 경제전문가가 걱정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014년까지만 해도 3%를 웃돌았지만 2015년 2.8%, 2016년 2.9%, 2017년 3.2%, 2018년 2.7%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도 1·4분기 1.7%(전년 동기 대비)와 2·4분기 2.7%에 머물렀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기조적 저성장세로 돌아선 것이다.

-일본이 징용문제로 무역보복을 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

△일본의 수출규제가 불합리한 것임을 국제사회에 여론화하는 한편 장기적 안목으로는 부품소재 산업을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우리 부품소재산업이 취약하고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이제야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이들 분야에 투자할 때 조세 감면과 융자 확대를 하고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서는 역사학자와 국제정치학자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종합검토를 해서 빨리 정리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시 꺼낼 게 아니라 정 안 되면 정부가 보상을 해주면 된다.

-자동차·조선·해운·철강·LCD·반도체 등 우리나라 기간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 기간산업에 있어 혁신이 저조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세계 우위를 유지하려면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해마다 뭔가 상당한 정도의 다른 새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의 전체 구성원이 각자가 하는 일을 해마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미국·독일·일본 등에 비하면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혁신의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

-제조업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부가가치율은 2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0%에도 못 미치고 제조업 노동생산성 증가율도 하향 추세다.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이 발전단계의 진전과 환경의 변화에 맞춰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1960년대 초반 이래 1990년대 말까지는 강한 습득력으로 선진국 기술을 익혀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해외로부터의 자본 도입과 각종 수출진흥정책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습득력을 기초로 하는 우리 경제 체질은 성장동력이 되지 못했다. 더 이상 높은 임금 수준과 소득 수준을 뒷받침할 수 없게 됐다. 산업사회로부터 지식사회로 이행해가는 인류사회 또한 새로운 경쟁력으로 지식력을 요구하고 있다. 지식력이란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정보를 수집·분석·처리하는 정보력,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 다른 경제주체와 협력하는 협력력으로 구성된다. 우리의 경우 정보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지만 창의력과 협력력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뒤떨어진다. 이 같은 새로운 성장동력의 결여가 부가가치율의 저하,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추락 등 일련의 구조적 침체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지식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나.

△우선 경제상황이 급하니 1년가량은 경기부양책을 써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동시에 창의력·협력력을 키우기 위한 연수를 하자. 근본적으로는 학교 교육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 경제를 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정부가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해 연수를 진행하고 기업 금융기관에도 제공하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영업 등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무료로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된다. 지식력을 키운다는 원칙하에 각 분야의 경제정책들을 망라하는 ‘한국경제 선진화 기초확립 10개년 계획’을 정부·기업 및 보수·진보 경제학자들의 중지를 모아 수립하고 현 정권의 남은 임기 동안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과 합리적 소득재분배에 의한 형평의 추구를 추진해갈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

-신산업 분야의 제조업 경쟁력도 높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의 경우 특수 분야에서는 정부의 계획적인 지원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런 분야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특별한 지원만 있다. 한국도 신산업 분야에서는 규제를 모두 없애야 한다. 사전 규제가 존재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적인 요소가 많은 신산업 분야에 누가 투자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려고 하겠나. 신산업 분야에 연구개발(R&D)하고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개인들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규제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제조업 둔화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서비스산업 육성이 시급하지만 진전이 별로 없다.



△1980년대 이후 컴퓨터가 급격히 보급돼 정보화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분야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서비스산업을 따로 특별히 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조업을 보완하려고 하기보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정보화·지식화가 촉진돼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이 더욱 융합되고 일자리가 확충되도록 해야 한다.

-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로 세계교역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대외지향적 발전을 추구해온 한국 경제는 197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국가 중 하나였다. 201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가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도전받으면서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가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주의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불평등의 심화 등 부작용을 많이 낳았기 때문에 부분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국 경제의 모든 조건은 대외지향적 발전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지금까지처럼 소수의 주요 수출대상국에 대한 집중적 노력으로 상대국의 저항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수출대상국을 다변화하고 수출 확대뿐만 아니라 수입증가도 함께 고려하는 보다 진화된 대외지향적 발전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경제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의 피해자는 당사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경제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지는 않겠지만 종전처럼 중국이 일방적으로 미국 시장을 계속 향유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지금까지처럼 미국 시장을 자유롭게 향유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미국 시장 진출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미국으로부터 수입증대도 고려하고 미국에의 투자 확대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기 전략을 수립해 대외교역시장의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유럽연합(EU)과 인도·베트남 등이 중점 진출을 도모해야 할 지역일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고 교전과 휴전을 반복하는 양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전환돼 잠재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

△ 매우 중대한 문제다. 무엇보다도 출산율 하락이 문제다. 후세대 사고의 차이도 있겠지만 인구 감소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식 양육의 어려움, 특히 교육문제라고 생각된다. 교육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인구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생후 6개월 되는 때부터 오전7시 아빠와 엄마가 출근하는 길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후6시 퇴근하는 길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게 하면 좋겠다. 학교 밖에 난립한 각종 학원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시설을 무상 사용하게 하는 대신 학원이 학교시설 임차료를 장학금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면 좋을 것 같다.

- OECD가 최근 한국에 대해 특히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개혁을 주문했다.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규제완화기획단을 6개월간 운영하고 종합 규제완화정책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지만 실패했다. 현재의 국무총리 산하의 규제조정실을 국무조정실 수준으로 격상해 정부의 모든 규제를 정비하고 어느 모로 보더라도 꼭 필요한 경제규제들만 도입해야 한다. 그것도 가급적 모든 규제를 직접규제가 아니라 간접규제하는 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 각 경제부처가 새 규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경우 반드시 규제조정실의 최종적인 결정을 거치는 식으로 혁명적인 규제철폐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

△한국의 노동시장의 최대의 약점은 정규직은 고용의 유연성이 너무 부족한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의 안정성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정규직은 고용의 유연성을, 비정규직은 고용의 안정성을 더 높여서 양측을 통합해 고용의 합리적인 유연성과 안정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나라 노동시장 개혁의 기본이다. 기업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정규직도 상당히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주가 자의적으로 해고할 수 없도록 고용의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의 차이도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편 경제정책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가 전부라고 할 정도다. 친기업이라기보다는 친노동정책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극단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진보성향의 그룹과 보수성향 그룹의 대립이 극심해 협치가 매우 어렵다. 미국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립하고 있지만 사안에 따라 협치가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선 진보성향의 현 정권이 생산성을 무시하고 분배에만 집중하는 극단주의에 빠지지 말고 생산성을 중시하면서 분배에도 신경을 쓰는 합리적 경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생산과 분배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기업의 생산이 위축되고 따라서 재분배정책의 대상이 될 소득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형평을 추구할 수 없게 된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지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에 발탁됐다. 1994년 재무부 장관을 거쳐 1996년 말까지 통상산업부 장관을 지냈다.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때 ‘신경제’ 구현을 주도했다. 정부에서 나와 부산대 총장과 아주대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유타대에서 교환교수로 지내면서 ‘혁신지식-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9가지 지혜’라는 책을 집필했다. 귀국해 한국에서 중견 교수들과 함께 ‘지식사회포럼’을 만들고 지식력, 즉 정보력·창의력·협력력을 키우는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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