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흐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일자리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노조 입장에서는 거대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입니다.”
독일 금속노조인 이게메탈(IG Metall)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 노조 단체다. 1만4,000여개 기업, 약 230만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 다임러·아우디·폭스바겐 같은 독일 완성차 업계를 포함해 총 30개 영역의 기업들이 속해 있고 155개 지역 사무소가 독일 전역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독일 정부가 ‘인더스트리4.0’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노동4.0’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게메탈에서 ‘노동의 미래(Future of work)’ 분과를 총괄하고 있는 데트레프 게르스트(사진) 박사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자동화·디지털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흐름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자동화를 통해 기업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면 이는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게르스트 박사는 “나아가 노동자 개개인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동화 흐름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동화=일자리 급감’이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당당하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기술 혁명 시대를 맞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양대 노총이 ‘귀족 노조’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투쟁에 몰두하는 사이 독일 금속노조는 미래 노동시장 변화의 대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게르스트 박사는 “실제 현장에 가보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생각보다 빠르지는 않다”면서 “노조로서는 시간을 벌었고 그 기간에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더스트리4.0’ 정책을 통해 가장 선제적으로 자동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제조 강국 독일이지만 오히려 현장에서는 속도가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그것도 노조에서 말이다. 그는 “우리는 산업 현장의 자동화·로봇화에 맞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게메탈은 ‘고숙련 기술자 중심으로 고용 시장이 바뀔 것’이라는 주요 연구기관 전망에 동의했다. 미래 노동시장은 중간 숙련 노동자가 사라지고 저숙련과 고숙련으로 인력 수요가 양극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게르스트 박사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하고 있다”면서 “단순 노동 일자리도 살아남기는 하겠지만 전문적이고 창의적 행위를 해야 하는 일자리의 임금이 올라가면서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투쟁에 매몰돼 있는 우리나라 노조와 달리 이게메탈의 목적은 철저히 노동자의 권익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게르스트 박사는 “자동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있다면 교육을 시켜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정부·사용자 측과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기업의 일이지만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프랑크푸르트=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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