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사진의 윈스턴 처칠(1784~1965)은 유독 더 피곤하고 우울해 보인다. 분명 뜨고 있으나 맥 잃은 눈과 두툼한 코 아래로 꽉 다문 입은 책 제목의 ‘끝없는 투쟁’의 삶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략가이자, 반(反) 소련 진영의 선두에서 ‘철의 장막’을 만든 인물에 걸맞은 사진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럴 만 했다. 처칠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피곤했다. 영국의 귀족가문 출신 아버지와 결혼한 미국의 벼락부자 집안의 철부지 어머니는 임신 말기인데도 궁정 무도회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춤추던 도중 산통을 느낀 어머니는 ‘유럽에서 가장 긴 복도’를 채 통과하지 못하고 중간의 의상실에서 처칠을 낳았다. 처칠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아버지 로드 랜돌프 처칠 경이었다. 그는 과격하게 적극적이고 천재적인 직관력을 지녔던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경탄하고 숭배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재능 없고 희망도 없는 실패자”로 보고 경멸했다.
영국식 교육시스템과의 싸움은 더욱 처절했다. 기숙학교 입학 시험에서 라틴어와 수학의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하기도 했다. 무능했던 게 아니라 저항했던 것이다. 열중했던 것은 동생과의 병정놀이였으니, 아버지는 아들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 ‘군대’라 생각했다. 사관생도 입학시험에서도 두 번이나 낙방했다. 말년에 정신착란을 겪던 아버지는 처칠이 활약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책은 처칠의 ‘수난과 투쟁의 연속’인 삶을 먼지 털듯 뒤져댄다. 저자는 “처칠은 무엇보다 먼저 전사였고, 그런 다음에야 정치가였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처칠은 타고난 전사임에도 매우 인간적이었고, 자주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표현 등으로 권력자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처칠을 강조한다. 잘난 것 없던 유년기의 껍질을 벗은 처칠은 히틀러와 대결하며 ‘비범함’ 그 자체를 보여줬다. 처칠은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글에서의 탁월한 묘사 능력과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는 눈부신 웅변술”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혼자 수채화를 그리며 스트레스를 극복하곤 했다. 말년에는 우울증과 뇌졸중에 시달리다 “모든 게 너무 지루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공언한 상황이라 처칠이 추구한 유럽 통합의 의지가 남달라 보인다. 1만6,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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