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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허점에 글로벌 CP 횡포 못막아…더 기울어진 운동장

['세기의 재판' 1심, 페이스북 승소]

法 "이용제한 아냐, 피해 주관적"…방통위 "즉각 항소"

인터넷 통신품질 관리 의무 통신사 역할만 더 커져

"글로벌 CP 제2·3의 횡포 이어져도 속수무책" 우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 간 행정소송 첫 판결에서 법원이 페이스북의 손을 들었다. 페이스북이 국내 접속경로를 임의로 바꿔 응답속도가 떨어지면서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지만, 고의성이 없으니 방통위의 과징금 부과가 위법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또 통신 품질을 유지할 의무가 콘텐츠공급자(CP)가 아닌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에 있다는 논리를 재확인한 판결이어서 이들 간 ‘망(網) 이용 대가’ 산정 시 글로벌 CP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 “현행법 상 통신품질 ISP 책임”=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22일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서버 접속경로를 임의로 바꿔 접속속도를 떨어뜨렸다며 지난해 3월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물렸지만 페이스북 측은 ‘비용절감 등 사업전략의 하나로 이용자 피해를 유발할 의도가 없었다’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1년 3개월여를 끈 소송의 승리는 페이스북에 돌아갔다.

페이스북이 완승한 배경은 제도적 허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현행법률상 CP는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할 의무 또는 접속 경로를 변경하지 않거나 변경 시 미리 특정 ISP와 협의해야 할 의무가 없다”며 인터넷 서비스 속도 저하의 책임이 통신사 등 ISP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이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 행위인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는 이용을 지연하거나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방통위가 접속경로 변경 전 응답속도나 응답속도 변동 평균값, 민원 건수, 트래픽 양 등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과징금을 물린 기준도 상대적·주관적·가변적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현행 법만 보면 통신 품질 관리 의무를 CP에 부여할 수도 없는데다 이용자 피해도 특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CP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성장해 제도적 제재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근거도 뚜렷하지 않은데다 증권계좌나 쇼핑몰처럼 접속 지연이 금전적 피해로 이어진 것도 아니어서 법원 역시 법리적 고의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셈”이라고 해석했다.

◇업계 “예상 밖 판결…횡포 되풀이 속수무책”=방통위의 승소를 예상했던 정부와 통신 업계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페이스북이 선방하더라도 과징금을 일부 깎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 만큼 충격은 더 크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를 기존 KT에서 홍콩 등 해외로 바꿀 경우 속도 저하는 불 보듯 뻔했다. 실제 이번 법원 심리과정에서 페이스북이 통신사에 e메일을 보내 접속경로 변경에 따라 품질 개선을 위해 캐시서버를 설치하라고 권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사실상 페이스북이 이용자 피해를 알고도 모르는 체한 ‘미필적 고의’를 저지른 만큼 방통위 승소를 확신했지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반면 페이스북 측은 입장문에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한국 이용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신 업계는 당장 이번 판결이 앞으로 글로벌 CP들의 제2, 제3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페이스북이 지난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 사이 접속경로를 바꾼 시기는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와 망 이용 대가를 산정하던 때였다. 페이스북이 통신사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일부러 접속경로를 바꿨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페이스북 접속속도 저하에 따른 민원은 국내 통신사로 쏟아졌고 SK브로드밴드는 고객 이탈을 우려해 서버를 확충했다. 페이스북은 현재 LG유플러스와 망 이용 대가 협상을 진행 중이고 구글이나 유튜브·넷플릭스 등은 사실상 공짜에 가깝게 서버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이나 다른 글로벌 CP들이 스스로의 경영판단을 이유로 접속경로를 바꿔 민원을 일으키면 국내 통신사들이 모두 떠안는 구조가 이어지는 만큼 페이스북 사태가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大法까지 불가피…“제도 개선해야”=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이날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판결) 결과를 존중한다”며 “대응 방향에 대해서는 판결문이 도착하는 대로 방침을 정하겠지만 항소는 바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한 만큼 이번 1심은 애초부터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항소심을 준비하는 한편 제도 개선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앞서 이효성 방통위원장도 “이기지 못하더라도 어떤 규제를 법적으로 도입해야 할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CP들에 이용자 보호나 통신 품질 유지를 강화하는 방안과 이에 따른 제재 등이 거론된다. 다만 CP들에 통신 품질 유지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CP들의 반대와도 맞서야 하고 통신 피해 범주를 어디까지 용인하는지 구체화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CP와 글로벌 CP 간 차별적 요소를 없애는 방안도 추진된다. 방통위 관계자는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는 동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국내 CP에 대한 규제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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