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영향으로 내년 건강보험료가 올해보다 3.2% 오른다. 지난해 8년 만에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가운데 건강보험 재원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건보료 폭탄’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2일 건강보험 정책 최고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2020년 건강보험료율을 3.2%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은 현행 6.46%에서 6.67%로, 지역가입자의 부과점수당 금액은 현행 189.7원에서 195.8원으로 오른다.
월평균 보험료를 보면 올 3월 기준 직장가입자는 11만2,365원에서 3,653원 증가한 11만6,018원으로 인상된다. 지역가입자는 8만7,067에서 2,800원 인상된 8만8,867원을 내년부터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 속도를 내면서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을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료율은 최근 10년 동안 2009년과 2017년을 빼고 매년 올랐다. 2007년(6.5%)과 2008년(6.4%), 2010년(4.9%), 2011년(5.9%)에는 4∼6%대 인상률을 기록했고 2012년(2.8%), 2013년(1.6%), 2014년(1.7%), 2015년(1.35%), 2016년(0.9%)에는 1% 안팎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난해와 올해 인상률은 각각 2.04%와 3.49%였다.
잇따른 건보료 인상에도 문재인 케어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수입 62조1,159억원에 지출 62조2,937억원을 기록해 당기손실 1,77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째 이어온 당기수지 흑자 행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8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건강보험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지만 정부는 누적 적립금이 20조5,955억원에 달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케어가 완료되는 오는 2022년까지 최소 30조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10조원은 누적 적립금으로 채우고 20조원을 건보료 인상으로 충당하면 여전히 10조원의 누적 적립금을 예비비로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총 13조5,000억원의 건강보험 수지 적자가 이어질 전망이다. 차기 정부에도 문재인 케어가 계속 시행된다고 가정하면 2023년부터 2027년에는 총 12조1,000억원의 적자가 추가로 발생해 적립금마저 완전히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가입자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에 따른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형평성 논란도 여전하다. 지난해 소득 상위 20% 지역가입자의 가구당 월 건강보험료는 전년 23만8,000원에서 1만4,340원(6.0%) 오른 25만2,340원이었다. 지난 2011년 인상분 7.9%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반면 소득 하위 20% 지역가입자는 1만1,060원에서 8.6% 감소한 1만110원이었다.
소득 상위 20%와 소득 하위 20%의 건강보험료 차이는 2014년 21배에서 25배로 더욱 벌어졌다. 저소득층은 납부한 건강보험료 대비 5.5배의 의료 혜택을 받은 반면 고소득층은 1.2배에 그쳤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따라 저소득층에게 감면 혜택을 주고 중산층 이상에게 부담을 가중시킨 결과라는 분석이다.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절반 이상은 납부한 보험료만큼 혜택을 받지도 못했다. 건강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가 1배 미만인 가구는 930만5,884가구로 전체의 52.3%를 차지했다. 납부한 보험료 대비 10배 이상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총 94만8,751명으로 전체 가구의 5.3%였다.
건보료 인상을 둘러싼 국민 여론도 싸늘하기만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건강보험 보장률과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57.1%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찬성하지만 보험료 추가 부담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보장성이 확대된다면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26.1%였고 ‘현재 보장성을 유지하고 나머지 진료비는 개인이 선택한다’가 16.9%였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보편적 의료복지 차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중요하지만 재정 확보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국고지원금 없이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문재인 케어가 계속 시행되면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적립금이 고갈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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