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데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승리한 결정적 이유는 제도 공백 때문이다. 글로벌 콘텐츠공급자(CP)에 통신품질 관리의 책임을 묻거나 이용자 피해를 명확히 할 마땅한 규정이 어디에도 없는 상황인데, 이를 보완하고 싶어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FTA)과 충돌할 수 있어 제도 개선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25일 방송·통신 업계에 따르면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페이스북과 방통위 간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후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자는 없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인터넷 접속 경로를 임의로 바꿔 이용자들의 불편을 초래한 사실은 분명히 인정했다. 다만 현행법에서는 CP에 통신 품질 관련 책임을 묻기 어렵고, 명문화한 별도의 제재 규정도 없다고 밝혔다. 이용자의 피해를 객관화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제도만 제대로 갖춰졌어도 소송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던 셈이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다른 글로벌 CP가 이용자 불편을 일으켰을 때 확실하게 제재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방통위도 지난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보완 의지를 내비쳤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개정법안이 올라와 있다. 김경진 의원은 지난해 9월 국외에서 발생한 행위가 국내 시장에 미칠 경우 글로벌 CP도 국내 기업과 같은 규제를 받고 일정 규모 이상의 CP에 통신품질 의무를 부여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변재일 의원은 지난해 11월 일정 규모 이상 글로벌 CP에 국내 서버 설치를 강제하고 위반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았으며, 유민봉 의원도 지난 3월 CP에 통신 품질 유지 의무를 얹는 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생각만큼 개정안 제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첫 걸림돌은 실효성이다. 이용자 보호 등을 소홀히 한 역외기업들을 제재할 때 집행력이 뒤따를지 의문이다. 나라밖에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도 만만치 않고, 해당 기업 소속 국가와 마찰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글로벌 CP가 대개 미국에 근거지를 둔 점을 고려할 때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제재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요 법안들이 일정 트래픽 이상 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꼽는데, 현행법상 글로벌 CP들의 지위인 부가통신사업자에는 트래픽 양에 대한 자료 제출 의무가 없어 기업 분류 조차 못할 수도 있다.
WTO 협정이나 한미 FTA 위반 소지도 있다. WTO는 국제 관계에 있어 국내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 경우를 공중도덕이나 공공질서 보호, 생명 및 건강보호 등으로 열거했다. 다른 모든 상황은 국내법에 따라 역외기업을 제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미 FTA는 해외 사업자의 국내 부가통신시장 진입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다. 글로벌 CP에 서버 설치를 강제하는 등 의무를 부여했을 때 무역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한국에 불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관련법 개정 시 이용자 보호에만 한정하는 식으로 통상마찰의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제약 요건에도 글로벌 CP의 무임승차나 상대적으로 국내 기업이 역차별 받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계속 좌시할 수 없는 만큼 정부도 대안 마련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최성호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통신 품질 관련)이전까진 기간통신사의 책임이 컸지만 글로벌 사업자의 책임도 커졌으므로 이를 다룰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