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씨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지적한 핵심 혐의는 승마 지원과 관련한 말 소유권 문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과 승계현안 간 연계성 등이었다. 이들을 모두 무죄로 본 이 부회장 2심과 모두 유죄로 본 박 전 대통령 2심의 판단이 맞선 가운데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 2심의 판단이 옳았다며 사실상 완승 판정을 내렸다.
29일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세 마리(약 34억원)의 실질 소유주가 최씨라는 판단이었다. 이 문제는 이 부회장의 실형 가능성과 맞물려 이번 상고심의 최대 쟁점이었다. 이 부회장 2심에서는 말 세 마리의 소유주를 삼성으로 봐 뇌물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실질 소유주를 최씨로 보고 유죄가 맞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 근거는 삼성이 당초 말 세 마리의 명의를 자기들 쪽으로 확정하려다 최씨가 화를 내면서 입장을 바꾼 정황에 있었다. 재판부는 말 명의 등재에 대해 최씨가 항의를 하자 2015년 11월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기본적으로 원하시는 대로 하겠다, 결정하는 대로 지원하겠다’고 보낸 문자 메시지에 주목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9월, 2015년 7월 단독면담에서 이 부회장에게 “승마 유망주에게 좋은 말을 사주라”고 말한 부분도 주요 근거로 삼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박 전 사장은 최씨에게 더 이상 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고 말의 실질적인 사용 처분 권한이 최씨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마필 위탁관리계약서도 결국 작성하지 않았다”며 “이 말들은 이 부회장이 최씨에게 제공한 뇌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삼성이 영재센터에 제공한 후원금(약 16억원) 역시 이 부회장 승계와 관련이 있는 제3자 뇌물로 봤다. 김 대법원장은 “삼성전자·삼성생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며 “이러한 승계작업에 관해 박 전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된 부정한 청탁 내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승계작업 자체로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각각의 현안과 대가관계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못 박았다.
최종 뇌물액수가 2심 36억여원에서 86억여원으로 크게 늘어난 이 부회장은 다시 치러지는 2심과 재상고심을 거쳐 형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2심에서 삼성의 승마지원 용역대금(약 36억원)이 유죄 판단을 받은 상황에서 추가 뇌물죄가 성립될 경우 뇌물액수가 50억원을 넘어 이 부회장에게 더 이상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이나 유기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대다수 2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된 가운데 ‘뇌물 혐의는 분리해 선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최씨 사건은 ‘일부 강요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각 파기환송됐다.
이 부회장 사건에서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후원금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김 대법원장 등 9명의 재판관과 달리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등 3명의 대법관은 “박 전 사장이 최씨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하더라도 말들의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영재센터와 관련해서도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현안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상옥 대법관은 별개 의견을 내고 “최씨가 수수한 이익은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지 박 전 대통령이 누린 것은 아니다”라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제3자 뇌물죄만 성립할 뿐 뇌물수수죄 공범으로 보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판결 직후 이례적으로 총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검찰은 앞으로 진행될 파기환송심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책임자들이 최종적으로 죄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받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총장은 2016년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팀장으로 파견돼 두 피고인의 뇌물 혐의 등을 수사했고 이듬해부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공소 유지를 지휘했다. /윤경환·백주연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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