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정부 예산안이 지난달 29일 발표됐습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입니다. 내년 예산으로 13조4,895억원을 배정받으면서 올해(10조2,664억원) 대비 30%나 늘어났습니다. 중기부는 이미 올해에도 전년 대비 15.9% 예산을 증액한 바 있습니다.
소재·부품·장비 관련 연구개발(R&D)과 ‘제 2벤처붐’ 지원을 위해 예산 증액이 이뤄졌다는 게 중기부 측 설명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액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문은 ‘융자’입니다. 올해 예산액 대비 1조2,200억원이나 늘어났습니다. 이 재원은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시설·운전자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이들 정책자금을 늘렸다는 건 넓은 의미에서의 경기부양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비교적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공적자금을 시중 금리보다 낮은 수준에 빌려줘 투자와 생산에 활용할 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입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업계를 중심으로 자금 순환이 원활치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책자금은 ‘유효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지원정책보다 재정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적다는 것도 중기부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공적자금을 ‘빌려준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회수 가능한 돈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자금을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전액을 모두 보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다만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에서 융자 부실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건 과제로 꼽힙니다.
◇1조6,000억원 늘어난 자금지원 예산
자금지원은 전통적으로 중기부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왔습니다. 지난해에만 6조1,552억원이 편성되며 전체 예산액 중 60%를 차지했습니다. 올해에는 총 7조7,553억원이 반영되며 전체 예산액 중 점유율이 57% 수준으로 줄긴 했습니다. 그러나 추가 액수로만 보면 1조6,001억원으로 전체 부문 중 가장 큽니다.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중소기업 정책자금, 소진공의 소상공인 정책자금입니다. 올해 3조7,000억원 수준에 머무르던 중진공 융자예산은 4조6,000원까지 편성됐습니다. 이 중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게 대출한도를 상향 적용하는 미래기술육성자금과 고성장촉진자금을 각각 3,000억원씩 편성한 게 골자입니다. 소진공이 관리하는 융자액은 올해 1조9,500억원에서 2조2,5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보증공급액도 늘어납니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에 각각 2,700억원, 1,700억원, 1,011억원씩의 정부출연금을 할당함으로써 올해 예산 대비 정부출연금을 3,552억원 늘린 게 골자입니다. 이에 따라 이들 세 기관의 중소기업·소상공인 보증 규모가 전년도보다 8조8,000억원 늘어난 31조원까지 커질 수 있을 거라는 게 중기부 측 설명입니다.
◇‘경기부양책’으로서의 중소기업 자금지원
중소기업·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 예산은 ‘경기부양’ 성격이 강합니다. 시중 이자율보다 낮은 금리에서 시설·운전자금을 빌려준다는 목적에서입니다.
보통 시중 이자율은 각 기업의 신용도를 반영해 결정됩니다. ‘실제로 이 기업이 자금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소상공인은 대출을 지원받을 여력이 다른 곳에 비해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금 상환 부담도 클 수밖에 없죠. 중진공이나 소진공이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융자를 지원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처럼 대내외 경기 요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선 이 같은 저리 융자가 ‘유효수요’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융자는 기본적으로 ‘시간 간 거래’입니다. 당장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일정 이자율을 내고 미래의 돈을 사오는 것입니다. 현재 중소기업·소상공인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리의 정책융자를 늘리는 건 타당한 정책 처방일 수 있습니다. 정부가 ‘불경기 단계’에 공적 자금을 빌려주면, 이후 ‘경기 회복·상승기’에 이를 회수할 수 있다는 기대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올해 7월 기준 중소제조업 자금사정 SBHI는 75.9를 기록하며 전년·전월 대비 각각 1포인트, 2.3포인트씩 하락했습니다. 그만큼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책융자는 경기부양, 중소기업 지원 등 여러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실률 상승’ 변수는 걸림돌
다만 시중 이자율보다 낮은 금리에서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잠재적인 자금 손실은 불가피합니다. 특히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경우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때 매입금리보다 낮은 금리에 정책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에서 예대마진을 통해 수익을 버는 것과 달리, 중진공이나 소진공은 ‘역마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2차 보전예산을 편성하게 됩니다.
임 교수는 “예컨대 중소기업진흥채권(중진공이 정책자금 등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 매입기관에게 3%대의 금리를 내고 중소기업 정책자금으로는 2%대의 이자율을 받는다면 1%대의 역마진을 보게 된다”며 “2차 보전예산을 편성하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시중 금융기관보다 느슨한 기준에서 정책자금을 제공하다 보니 부실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로 대손충당금도 설정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부실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경제가 지난 5월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소기업 정책자금 부실률 현황’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기 정책자금 부실률은 약 2배 가량 늘었습니다.
보통 부실률은 상환 타이밍을 기준으로 책정합니다. 2017~2018년도에 인건비 인상 이슈, 연대보증 폐지, 불경기 등의 이슈가 한꺼번에 몰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부실률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구나 융자 자금이 많아질수록 부실률이 오를 가능성도 커집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경기 부양을 위해 중소기업·소상공인 정책자금을 조기 집행하게 되는 일이 많다”며 “이 과정에서 융자 자금도 늘어난다면 비교적 신용 수준이 부실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일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다른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육성정책과 시너지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홍순영 한성대 특임교수는 “어려운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정책융자를 늘리는 건 바람직하다”면서도 “하지만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융자 건전성이 악화할 우려도 큰 것으로 보인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는 게 근본 과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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