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와 국민연금 등 문제 해결이 시급한 경제·사회 이슈들이 공전하고 있다. 추진 결과에 따라 거센 반발이 예상될 만큼 찬반이 극명히 갈리는 주제여서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의사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 52시간 적용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탄력근로 확대를 서둘러야 하고 국민연금 고갈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총선 표심을 의식해 손을 놓고 있다.
◇헛도는 탄력근로 확대=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2기가 곧 출범할 예정이지만 핵심 쟁점에서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탄력근로제 개편을 두고 견해차가 여전한 탓이다. 지난해 11월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를 표방하며 출범했던 1기 위원회 역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은 지난 2월 이미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데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하지만 청년·여성·비정규직 근로자위원이 이에 반발하며 본위원회를 보이콧해 지금까지 진전을 보지 못했다. 2기 경사노위에서 해당 위원을 교체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단위기간을 확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소수 계층 대표들을 사실상 쫓아낸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해촉된 계층별 위원 3인은 지난달 30일 공동성명을 내고 “집단해촉으로 경사노위 1기는 실패했고 정부와 집권여당, 주요 노사단체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 여전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도 부담으로 꼽힌다.
기업들이 과속 주52시간 시행으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는 기업 생산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민노총 등 노조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정부와 여당이 몸을 바짝 엎드리면서 기간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개혁도 안갯속=국민연금 개혁 역시 전망하기 어렵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민연금 개편 단일안을 도출하겠다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사회적 대화 기구에 논의를 미루는 방법을 선택했고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 보장 제도 개선위원회(연금개혁 특위)’가 이를 담당했다. 약 10개월간의 활동 끝에 지난달 30일 활동을 마무리했지만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총 3개의 개편안을 보고했다. 현재 40%인 소득대체율과 9%인 보험료율을 각각 45%와 12%로 높이는 다수안과 현행 유지안, 소득대체율 40%와 보험료율 10%의 소수안이다. 결국 최종 결정은 국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 역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기에는 여야 모두 부담이 큰 탓이다. 현재와 같이 국민연금 제도가 이어진다면 기금 고갈 속도가 빨라지고 미래세대가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보험료 인상을 자제하면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을 고수하다 보니 해법을 찾지 못하고 날 선 공방만 오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단 국민연금 개혁안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지만 내년 총선 표심을 의식해 여당은 물론 야당도 해법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기간 공전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증세 논의는 깜깜=증세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 정부는 내년도 513조원대의 슈퍼 예산을 편성하면서 2년 연속 예산을 9% 이상 늘렸다. 지출은 늘어나는데 들어오는 돈은 오히려 줄었다. 내년도 국세수입은 올해보다 2조7,0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9.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로 향후 지출은 더 늘어나는 반면 어려운 경기로 세입여건은 불투명한 셈이다. 이대로라면 부족한 나라 곳간을 국채 발행 등 빚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증세 논의가 진행돼야 할 시점이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1일 “현재로서는 증세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증세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회 주요 분야의 정책 추진이 늦어지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최근 정부가 정책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내년 총선 전까지 민감한 주제를 건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보인다”며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자꾸만 주요 정책의 의사 결정이 미뤄지면 결국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4대강 문제도 지부진=4대강 보 관련 문제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안에 처리 방안이 확정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갈등이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처리 방안을 결정할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7일에서야 출범했다. 당초 계획보다 두 달 가까이 연기된 일정이다. 물관리위원회는 지난해 제정된 ‘물관리기본법’에 따라 물 관련 주요 현안을 심의·의결하고 물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올 2월 환경부가 발표한 금강·영산강의 3개 보 철거 방안을 최종 확정·결정하는 것 역시 물관리위원회의 몫이다. 출범이 늦춰지면서 4대강 보 최종 처리 방안을 올해 안에 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출범과 함께 진행한 첫 회의에서 금강과 영산강 보 처리 문제는 논의되지도 않았다. 물관리위원회 소속 유역물관리위원회도 아직 출범하지 못한 상태다. /세종=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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