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 미국 코닝사가 광섬유 개발에 성공하며 광통신 시대가 열렸다. 1979년 우리나라는 서울중앙전화국과 광화문전화국 사이에 광섬유케이블을 연결했다. 광케이블은 손상되면 보수가 힘든 문제는 있지만 구리선에 비해 신호 왜곡이 거의 없고 전송 속도가 매우 빨라 꿈의 케이블로 불린다.
나아가 지난 20여년간 세계적으로 전자소자가 갖는 처리속도 등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나노광학 연구가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나노광학은 빛의 파장보다 매우 작은 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단위로 빛을 줄여 전송하고 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노 단위로 빛을 국소화할 경우 전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극복하지 못해 실용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9월 수상자인 송석호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열린-양자역학계에서의 비대칭적 에너지 흐름’을 독창적으로 연구해 기존 나노광학이 해결하지 못한 에너지 손실 문제, 처리 속도를 개선하고 신개념 광소자를 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열린-양자역학은 운동상태의 총 에너지가 일정하게 보존되지 않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까지 다룬다.
그동안 고집적 광학회로 구성이 가능한 메타물질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으나 나노 단위로 줄이면 물질의 흡수특성에 의해 에너지 손실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메타물질은 자연계에 없는 물질의 특성을 만드는 인위적이고 반복적인 패턴 구조이다.
많은 연구자가 에너지 손실을 보상하고 증폭하는 이득물질(gain medium)을 첨가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지만 이들 물질이 나노 크기로 결합된 미세구조는 비선형적 특성을 보여 기존 나노광학 방식으로는 설계와 구현이 어려웠다.
송 교수팀은 열린-양자역학 시스템의 비-허미시안(non-Hermitian) 특성이 갖는 비대칭적 에너지 흐름 원리를 나노광학 기술에 도입하고 수학적 대칭성과 특이성을 광소자 기술에 적용해 에너지 손실 문제를 극복했다. 비-허미시안은 총 에너지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특성을 나타내는 함숫값이다. 광도파로에 빛을 전송하면 양방향으로 빛에너지가 전달되는 공간적·시간적 대칭성을 갖지만 열린-양자역학 이론을 적용하면 광도파로에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대칭성이 붕괴되고 단방향으로 에너지 전달이 가능해지는 원리를 규명한 것이다. 광도파로는 빛이 이동하는 길로 광통신에서는 광신호를 전달하도록 설계된 광섬유 등을 뜻한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광신호 흐름의 공간적·시간적 대칭성을 붕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광다이오드를 실리콘 웨이퍼 상에 집적화된 소자 형태로 구현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원동력이 될 고집적 나노광소자의 설계·구현 기술을 실용화 단계까지 발전시킨 것이다.
송 교수는 “신개념 광소자는 차세대 이동통신과 국가기간망 사업, 우주개발, 양자컴퓨터 개발 등에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독창적 연구로 난제를 해결하며 광과학 영역을 개척하겠다”고 밝혔다. 연구 성과는 지난해 10월 네이처에 게재됐다.
“기술한계 극복해 방향성 제시하는게 물리학도 사명”
“나노광학소자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에너지 손실 문제를 극복하는 게 과제였는데 독창적으로 접근해 풀 수 있었습니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9월 수상자인 송석호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노광학소자는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과 컴퓨터 시스템 구현을 위한 핵심기술로 나노기술(NT)에 기반하지만 에너지 손실이라는 난제가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해 10월 네이처에 실리콘 공정으로 만든 NH 나노광학소자 제작 결과를 발표했다. 에너지 손실 문제를 극복하고 반도체 칩과 같은 형태로 실용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초로 검증받았다.
그는 “물리적 한계까지 고려해도 에너지 손실을 피할 수 없다면 역으로 이를 유용한 정보로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발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리학에서는 어떤 시스템의 총 에너지가 보존되며 닫혀 있지 않고 손실 등으로 변화하는 상태를 열린-역학 시스템 또는 NH 시스템(non-Hermitian system) 이라고 부른다. 그는 “5년 전 NH 시스템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세계적으로 극소수 연구자들만 기본 이론과 실험을 진행했다. 국내 학술회의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 이상하게 취급받기도 했다”며 “반도체 칩처럼 집적화된 나노광소자화는 전혀 시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현재 기술의 돌파구를 찾아내 공학기술 연구자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이 물리학도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기존 한계에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 독창적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며 “생각을 거듭하며 업데이트된 논문을 읽고 시도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나노광학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며 “최근 NH 광학계와 위상-부도체 광학계를 융합해 양자컴퓨터를 위한 논리회로 소자를 개발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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