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8년 호주 북동쪽에 위치한 섬에 도착한 스페인의 탐험가 알바로 데 멘다냐는 자신이 발견한 이 섬이 황금이 가득한 보물섬이기를 바랐다. 금은보화가 가득했다고 하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성전을 떠올리며 그는 인근 섬들을 묶어 솔로몬제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들 섬에는 생각했던 것만큼 금은보화는 나오지 않았다. 천연자원이 많지 않았던 이 섬들에 대한 탐험가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시들해졌다.
이후 200여 년간 유럽인들의 머리에서 잊혀졌던 솔로몬제도에 다시 눈길을 둔 나라는 영국이다. 1850년대에 영국인 탐험가들이 솔로몬제도로 들어온 후 사탕수수 농장을 세우고 섬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1차 대전 때는 독일이 솔로몬제도에 눈독을 들였다. 아름다운 태평양 섬나라였던 솔로몬제도는 2차 대전 때 일본이 점령하면서 전운에 휩싸인다.
진주만 피습 후 태평양전쟁에 고전하던 미국은 솔로몬제도의 한 섬에서 반전을 꾀한다. 2차 대전 전쟁사의 중요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유명한 과달카날 전투다. 태평양전쟁의 수많은 전투 가운데 가장 참혹했다고 알려진 과달카날 전투는 영화 ‘씬 레드 라인’의 소재가 됐다. 과달카날 섬에 구축한 일본군 진지를 미군이 악전고투 끝에 점령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에서 명장 테런스 맬릭 감독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비극적 전쟁 속에서 과연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1942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6개월여간 벌어진 이 전투에서 미군과 일본군은 수만명의 전사자를 남겼다. 과달카날 섬 등은 전쟁 당시 무기잔해들이 많이 남아 전쟁박물관으로도 불린다.
남태평양 섬나라 솔로몬제도가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는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솔로몬제도 의회는 조만간 중국 수교 제안서를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에게 제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솔로몬제도가 대만과 단교할 경우 대만의 수교국은 16개로 줄어들게 된다. 대만과의 오랜 우정에도 불구하고 27억달러가 넘는 무역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직접적인 압력을 무시하긴 힘들었을 터다. 힘에 좌우되는 외교무대의 냉정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남중국해는 물론 태평양 한복판으로까지 파고드는 중국의 패권 야욕이 또 다른 비극을 몰고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홍병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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