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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저물가'를 대하는 엇갈린 시선…한국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정부·한은과 국책연구기관의 해석 온도차

"공급 측 요인에 기인" vs "수요위축 탓도 크다"

"정부 수요위축 인정은 소주성 실패 자인" 분석도

저물가 기조 계속 이어지면 서민 가계 윤택?

기업투자 감소, 소비 심리 위축에 경기 전반 침체

뒷북경제






최근 통계청은 8월 소비자 물가가 전년 동기보다 0.04% 하락해 1965년 통계 집계 이후 첫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물가 상승률은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하기 때문에 공식 수치는 ‘0.0%’로 나왔으나 소비자 물가지수가 지난해 8월 104.85에서 올 8월 104.81로 하락한 만큼 “사실상 첫 마이너스 물가라는 것”을 통계청이 인정했습니다.

올 들어 소비자물가가 계속 1%를 밑돌다가 급기야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우리 경제가 ‘경기 침체 속의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곳곳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저물가 기조까지 겹치면 장기적인 경기 불황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죠.

이런 가운데 저물가의 원인에 대한 정부·한국은행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명에서는 교묘한 온도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우선 정부와 한은은 “저물가 상황이 수요 측 요인보다는 공급 측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며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양파·마늘과 같은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의 하락이 마이너스 물가를 이끈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죠.

반면 KDI는 통계청의 소비자 물가 발표 이후 발간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다소 다른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KDI는 이 보고서에서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면서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역대 최저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수요 위축에 공급 기저효과가 더해진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공급 측 요인을 지목하면서도 정부와 달리 ‘수요 위축의 영향’을 분명히 적시한 것이죠.

KDI는 수요 위축의 근거로 소매 판매와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수출 부진 등을 내세웠습니다. 우선 7월 소매 판매액은 전년 같은 달보다 0.3% 감소했는데 6월 소매 판매액이 전년보다 1.2% 늘었음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감소폭입니다. 8월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전월 대비 3.4포인트 하락한 92.5를 기록했죠. 대외 여건이 점점 악화하면서 수출도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8월 수출 금액이 전년 동월보다 13.6%나 떨어진 것은 반도체(-30.7%)·석유화학(-19.2%)·석유제품(-14.1%)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탓입니다. 이처럼 정부와 KDI가 물가 하락의 핵심 요인을 다르게 분석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수요 위축을 인정하는 것은 곧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KDI는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느냐’에 관해서는 정부와 비슷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KDI는 “근원물가(농산물·국제원자재 가격 등 일시적 영향이 큰 품목을 뺀 기초적인 물가) 상승률이 0% 후반대에 형성돼 있는 만큼 올해 말이면 일시적 요인이 소멸해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수개월 만에 1.5~2.0%대를 회복하긴 힘들겠지만 연말 이후에는 적어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것은 디플레이션의 분명한 징조라는 것이죠. 디플레이션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든 아니면 디플레이션이 이미 시작된 것이든 재정과 통화를 아우르면서 소비 진작을 위한 정책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쯤 해서 문득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특히나 갈수록 얇아지는 지갑을 보며 한숨만 내쉬게 되는 서민 입장에서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기온만큼 물가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반가운 뉴스가 아닐까? 1인분에 1만5,000원 하던 삼겹살이 1만2,000원으로 내리고 1㎏에 1,500원 하던 양파가 1,300원으로 떨어지면 서민들이 한결 여유롭게 가계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죠.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문이지만 우리 경제 전반으로 시각을 넓히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물가가 적당히 오를 때는 경제가 선순환의 고리 안에서 움직이는 반면 저물가가 계속 이어지면 소비자들이 당장 소비를 줄이게 됩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가격이 더 떨어질 텐데 뭐하러 지금 구매하느냐’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소비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심만만하게 신규 투자를 계획했던 회사들은 디플레이션이 시작될 징조가 보이면 물품과 장비, 부지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투자를 차일피일 미루게 됩니다. 적당한 수준으로 물가가 오를 때와 달리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하면서 ‘기업 투자·고용 감소→실업자 증가→가계소득 감소→소비 침체’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죠.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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