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참가비만 5,000달러이고 막상 2부 투어에 진출해도 진짜 외롭고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꿈을 크게 가지고 멀리 내다보면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통화한 이재경(20·CJ오쇼핑)은 “힘든 생활을 잘 이겨내서 올라가면 그만큼 보상이 크다고 하더라. 부담보다는 설렘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달려가겠다”고 했다.
지난 1일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데뷔 첫 우승을 달성한 신인 이재경은 오는 24일부터 나흘간 캘리포니아주 샌저신토에서 열리는 콘페리 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 1차전에 출전한다. 콘페리 투어는 최고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2부 투어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한 1차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1·2차와 최종 시험까지 통과해야 콘페리 투어 멤버가 되고 2부에서 시즌 포인트 상위 25위 안에 들어야 다음 시즌 PGA 투어 카드를 손에 넣는다. 국내 투어에서 일찍 터진 첫 우승에도 이재경은 어둡고 긴 터널 속으로 기꺼이 첫발을 내디뎠다.
PGA 2부 투어 시험에 한국인 수험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재경 외에 장승보(23), 김재일(23), 윤경식(19)까지 4명이 퀄리파잉 1차전에 나선다. 1차전 출전 자격이 안 돼 프리 퀄리파잉에 참가했다가 떨어진 오승택(22)을 포함하면 올해만 5명이 문을 두드린 것이다. 예년과 달리 모두 20대 초반이라는 것도 눈에 띈다. 최근 임성재(21), 김시우(24) 등 ‘영건’들이 쓴 성공 스토리가 도전정신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성재는 2부 투어 첫 시즌에 상금왕에 올라 2018~2019시즌 PGA 투어에 진출했고 아시아 최초로 PGA 투어 신인상까지 받았다. 김시우도 2013~2015년 2부 투어에서 경험을 쌓은 뒤 PGA 투어에서 2승이나 올렸다. 강성훈과 이경훈 역시 오랜 2부 생활을 거쳐 최고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PGA 투어는 2012년에 퀄리파잉 스쿨을 폐지했다. 2부 투어를 거치지 않고 PGA 투어에 진출하는 길은 이때부터 사실상 막혔다. 2부 투어는 ‘눈물 젖은 빵’에 익숙해져야 하는 곳이다. 한 시즌 25개가 넘는 대회가 열리고 우승상금도 대회당 보통 10만달러(약 1억1,900만원) 이상이지만 교통과 숙식 등 경비를 빼면 남는 게 없다. 찾아가기도 힘든 미국 내 구석구석을 돌아야 한다. 콜롬비아·파나마에서도 대회가 열린다. 무엇보다 난다 긴다 하는 세계 각국의 유망주들이 다 모인 곳에서 상금 한 푼 건지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런 정글에서 임성재는 데뷔 시즌에 2승을 올리고 올해의 선수로도 뽑히면서 국내 유망주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임성재가 했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고 싶었다”는 말을 이재경도 이날 똑같이 했다. 둘은 국가대표 시절 같은 방을 썼던 사이다. 김시우와도 친한 이재경은 퀄리파잉을 준비하는 동안 김시우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캘리포니아 코스의 특성, 쇼트게임 전략 등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이재경은 “(김)시우형이 빨리 (PGA 투어) 올라와서 같이 대회장 다니자고 장난식으로 얘기해주셨다. 그 장난스러운 얘기가 저한테는 더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장승보와 오승택은 지난해 아시안게임 단체전 동메달리스트이고 김재일은 5월 KPGA 투어 대회에서 공동 14위에 오른 신인 선수다.
미국 2부 투어 퀄리파잉 1차전은 12개 코스에서 나눠 열린다. 보통 한 코스에 78명씩 경쟁하니까 수험생만 무려 900명이 훨씬 넘는다. 한 코스당 25~30명씩이 10월29일부터 시작될 2차전에 진출하고 최종전은 12월12일부터 나흘간 플로리다주에서 펼쳐진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