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오피스 빌딩이 국내 부동산 투자 업계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해외 대체투자 확대를 위해 경쟁적으로 빌딩을 사들였지만 인수 후 재매각(셀다운) 물량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있다. 수수료를 노린 증권사의 무리한 투자가 재투자에 나선 기관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가 셀다운을 진행 중인 파리 오피스 7곳 중 2곳 정도만 관련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5곳은 투자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파리 동부 뤼미에르다. 한화투자증권과 삼성SRA자산운용이 현지 운용사 프리모니얼 하임(Primonial REIM)과 컨소시엄으로 1조5,000억원의 건물을 인수했다. 파리 구도심 12지구 인근 신흥업무지구 중심가에 있어 기관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크리스탈파크도 재매각 작업이 무난하다. 삼성증권(016360)이 5월 말 현지 부동산 투자사인 이카드(Icade)와 9,150억원에 건물을 인수했다. 3,740억원에 달하는 에쿼티 지분 등 95% 이상의 물량을 대부분 셀다운 했다.
하지만 나머지 5곳은 해당 업체에는 골치다. 미래에셋대우(006800)가 투자한 라데팡스 마중가(1조830억원)가 대표적. 7월부터 셀다운(3,740억원)을 진행 중인데 물량이 많지 않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6개월 내 셀다운을 못하면 마중가를 인수한 본부는 수수료 수입을 페널티로 회사에 뱉어야 한다. 셀다운 물량을 우선수익증권(2,300억원)과 보통수익증권(1,200억원)으로 나누고 해외 투자자까지 모집에 나선 이유다. 다만 해외 투자자는 환헤지 문제가 변수다. 미래에셋은 “추가 환헤지 비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투자 상황도 비슷하다. 대신증권과 함께 투자한 라데팡스 지역 CBX타워(5,800억원)와 르크리스탈리아(2,200억원)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NH투자증권(005940)의 투어에코(9,700억원)나 한국투자증권의 투어유럽(3,700억원)도 투자자를 찾고 있다.
셀다운이 지연되는 파리 빌딩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파리 북서쪽 부도심인 라데팡스에 위치한다. 4곳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라데팡스에는 최근 오피스 공실이 줄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2년간 빌딩 공급이 다수 예정돼 있어 공실률이 치솟을 수 있다. 공제회의 한 관계자는 “기대하는 수익률이 나올지 불투명해 투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증권사가 파리 외곽까지 몰려간 이유는 간단하다. 남아도는 자금을 넣을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다. 주요 국가는 물론 동유럽(체코)과 북유럽(핀란드)에도 투자했지만 실탄은 남았다. 결국 수익률은 다소 낮아도 안정적일 것이란 기대에 파리 외곽 지역까지 투자금이 몰린 것이다. 해외 오피스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년 단위 실적을 종용하는 증권업계 문화에서 장기 가치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NH투자증권은 “에코타워는 9월 30일 인수 직후 셀다운이 72%나 진행됐다”며 “KPMG와 현지 국영2위 가스회사 등등 쟁쟁한 회사들이 임차해 괜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