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온통 ‘조국 사태’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어떻게든 조국 법무부 장관과 연관된 자료들 위주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정감사 전체가 ‘조국 청문회’로 변질되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A씨)
국감을 불과 하루 앞둔 1일 정부세종청사에는 ‘창과 방패의 대결’을 준비하는 관가 특유의 분주함이나 긴장감이 돌지 않았다. 내부 직원끼리 모여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출입기자들과 식사를 할 때도 화제는 단연 ‘조국’이었다. 저마다 지난주 말 ‘조국 수호’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정확히 몇 명인지, 앞으로 검찰 수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면서 국감 이슈는 한참 뒷순위로 밀려난 것이다.
조 장관을 둘러싼 공방으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마저 진영논리에 따라 ‘내 편, 네 편’으로 쪼개지면서 세종 관가에는 ‘이러려고 공무원이 됐나…’라는 무력감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정책 수단·효과에 대한 방어와 변호의 무대가 돼야 할 국감이 정쟁의 장(場)으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감사가 끝난 후에도 경제·민생법안에 대한 치열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 채 모든 이슈가 ‘조국 블랙홀’에 빨려들어갈 것이라는 우려 탓이다.
특히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조국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면서도 국감 전체가 ‘조국 청문회’로 변질되는 모습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터뜨리고 있다. 과장급 공무원인 B씨는 “정책 방향을 놓고 침 튀겨가면서 갑론을박을 펼쳐도 모자랄 만큼 대내외 여건이 안 좋은 판국에 장관 한 명의 인사에 온 나라가 휩쓸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책 하나 만들려고 날밤을 새우며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사실 중앙부처와 각 공공기관에 국감은 ‘양날의 검’과 같은 이벤트다. 정책의 배경을 설명하고 홍보하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서운 눈빛으로 달려드는 야당 의원들의 호된 질책을 감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실·국장은 물론 과장·사무관까지 이 시기만 되면 자신이 속한 부처의 장관이 의원 질의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밤낮없이 자료를 모으고 보고서를 만든다. 그런데 올해는 정책에 대한 관심도가 확 떨어지다 보니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잘됐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조국 이슈의 파급력이 워낙 크다 보니 공무원 입장에서는 국감 시즌임에도 그 어느 해보다 한산하게 느껴진다”며 “예년처럼 야당 의원들한테 정책을 놓고 하루 종일 얻어터질 일은 없으니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조 장관 일가를 둘러싼 사모펀드 때문에 죄 없는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부처 공무원은 “‘조국 펀드’가 투자하기 전부터 정부 보조를 받아온 기업이 있는데 며칠 전 ‘조국 펀드 때문에 지원을 받았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오더라”며 “나름의 심사를 거쳐 업체를 선정한 것인데 기업을 위한 지원사업이 위축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최근 조 장관의 처남이 몸담은 해운사가 정부 주도의 한국해운연합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해양수산부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정부는 즉각 브리핑을 열고 “관련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국감이 끝나도 여야의 정치적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연말이 되면 정치권이 일제히 ‘총선 체제’로 전환되는 만큼 조국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데이터 3법’ 등의 경제·민생법안은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한 채 폐기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한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국감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서울 여의도의 국회 사무실에 근무하는 보좌진들이 지역구로 총출동해 민심의 추이를 살피는 경우도 많다”며 “국감이 끝나고 예산안 심사를 하게 되면 법안 논의는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세종=나윤석·조양준·김우보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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