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기아차와 모비스, 글로비스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들의 IR(Investor Relations) 담당 조직을 사장 직속으로 격상·개편했다. 주주·투자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IR 조직의 의사결정 속도와 위상을 높여 주주가치 제고와 함께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 당시 문제가 됐던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조직 개편에 주요 계열사들이 포함됐다는 점을 주목하며 현대차그룹이 미뤄졌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2일 자동차 업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1일 조직 개편을 통해 IR 담당 조직을 기존 재경본부 소속에서 이원희 사장 직속으로 개편했다. ‘회장실-수석부회장실-사장실-재경본부-IR 담당’으로 이어지던 조직에서 IR 담당을 떼어 내 ‘회장실-수석부회장실-사장실-IR 담당’으로 간소화한 것이다. 그만큼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이원희 사장 등 수뇌부가 IR 관련 업무를 더 많이 파악하고 챙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존 조직에서는 IR 관련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고 느렸던 측면이 있었다”며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간소화한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확보해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신뢰를 높이고 그간 강조해온 주주가치 제고를 이루기 위해 조직을 개편했다는 얘기다.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 자율주행, 도심용 항공 모빌리티, 공유차량 등 미래 자동차 산업으로의 변화가 가속화하면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흐름 또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과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현대차그룹의 IR 조직 개편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연관 짓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측은 “지배구조 개편과 연결 짓는 것은 과도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IR 조직 개편이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모비스와 글로비스 등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에서 동시에 단행됐다는 점, 사실상 다른 조직의 변동 없이 IR 조직에 대해서만 ‘원 포인트 개편’이 이뤄졌다는 점 등을 들어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계열사 IR 조직까지 사장 직속으로 개편된 것은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 사장실을 통해 IR 업무를 챙기고 기관투자가들에 적극적으로 그룹의 방안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말 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분할해 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존속 모비스에 핵심 부품 부문 등을 남겨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대주주가 보유한 합병 글로비스 주식과 기아차가 보유한 존속 모비스 주식도 교환해 순환출자 고리도 끊기로 했었다. ‘대주주-존속 모비스-현대차-기아차-합병 글로비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반대하고 기존 모비스 주주들에 불리하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이 나오면서 결국 현대차그룹이 개편안 철회를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IR 조직을 개편하면서 강조한 시장과의 소통 강화는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도 필요한 상황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 5월 칼라일그룹과 가진 대담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투자자와 현대차그룹 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개편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원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투자자 설득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IR 조직을 사장 직속으로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박한신·김민석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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