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중국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국경절’ 열병식이 진행된 베이징의 톈안먼(천안문) 성루에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TV를 통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도중 살짝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인 홍콩에서는 홍콩 경찰이 18세 남학생을 조준 사격해 중태에 빠뜨렸다. 람 장관이 그 남학생을 쏘라고 직접 명령한 것은 아니지만, 경찰의 총기 남용에 대한 책임이 홍콩 수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이날의 열병식을 포함해 지난주 내내 축제로 들썩였다. 열병식에 나온 무기들은 세계 최강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경기 둔화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경제는 매년 크게 성장했으니 중국인이면 누군들 자랑스러워하지 않겠나. 반면 홍콩은 지난주 공포의 나날을 보냈다. 또 다른 14세 소년이 경찰 총에 맞았고 외국인 여기자는 경찰 고무탄에 영구 실명했다. 시위대 수백 명이 체포됐다. 1일 베이징에서 밝은 표정이었던 람 장관은 4일 홍콩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사실상의 계엄령인 ‘긴급법’을 발동했다.
홍콩이 중국 본토와 분리된 것은 1842년이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때의 일이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전쟁배상으로 이 땅을 영국에 넘겨줬을 때 베이징 사람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이곳에 영국이 도시를 세우자 인근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이 행렬은 청나라 때부터 한족의 중화민국 시기까지 이어졌다. 1949년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름과 체제를 바꿨을 때 홍콩 사람들은 이 ‘신중국’을 낯설어했다. 영국 치하에서 고도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홍콩이 사회주의 일당 독재국가와 그 국민에게 친근감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의 계승자인 중화인민공화국은 1997년 홍콩을 돌려받았다. 중국에서 분리된 지 무려 155년이 지나서다. 중국은 당초 ‘일국양제’로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해준다고 했지만 이는 말뿐이다. 자치는 옅어지고 중국화가 속도를 냈다. 홍콩인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하다.
중국인들은 중국인들대로 홍콩에 대해 큰 반감을 갖고 있다. 홍콩인들이 영국이나 미국 등 외세에 물들어 조국을 배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 대학교수는 “처음에는 저렇게 반항을 해도 한 세대(30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중국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홍콩이 어떤 ‘중국’에 대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다. 홍콩인들도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들이 말하는 중국은 사회주의 공산당 일당독재가 유지되는 중국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영위하는 중국을 바란다. 중국인들도 자유와 민주를 운영할 수 있음을 이웃 대만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렇게까지 확대된 것은 단순히 송환법 자체에 대한 불만 때문은 아니다. 중국 귀속 이후 악화일로인
홍콩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 문제다. 홍콩 젊은이들은 자신을 ‘돈도 없고 아파트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다’는 “3무(無) 세대”로 부른다.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나 이 세 가지 원칙이 유지되는 사회는 안정돼 있다. 두 가지 혹은 하나만 있어도 붕괴는 피할 수 있다.
혹자는 최근의 홍콩 사태가 중국이 ‘중국몽’을 이루고 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때 주변국에서 일어나게 될 일을 암시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웃 나라에 강압적으로 패권행사를 한다는 의미에서다. 기자는 오히려 베이징이 더 불안하다. 한때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했던 중국의 성장엔진은 최근 미국과의 무역전쟁의 충격과 함께 체제모순이나 사회 활력 감소에 의해 점차 꺼져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중속 성장에 이어 저성장이라는 신시대에 들어섰다. 앞으로 상황은 더 악화할 듯하다.
베이징 청년들에게서 돈이 떨어지고 아파트도 구하기 힘들 날이 곧 올 듯하다. 홍콩에서처럼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민주주의라고는 없는 베이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1989년 톈안먼광장에서 일어난 사태는 미래 베이징 청년들에게서 재연될 수 있다. 홍콩 청년들은 지금 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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