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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가락 읊조려보니…세종의 '愛民' 보이더라

■'세종대왕과 음악 치화평'展

백성의 화평 바라며 작곡한 노래

악보 등 배경으로 판화 만들고

모르스부호 연결해 시각적 재해석

김홍식 ‘세종의궤도병-해동육룡이 나르샤’ 중 일부.




세종대왕은 왕위에 오른 지 31년 되던 1449년 12월 10일, 신하들과 종친을 궁으로 불러 잔치를 열었다. 취풍형(醉豊亨), 여민락(與民樂), 치화평(致和平)의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왕이 ‘스스로 막대기를 짚고 땅을 쳐가며 음절 삼아’ 작곡한 곡들이었다. 백성이 풍족하게, 즐기며 살기를 바란 노래다. 이들은 훗날 ‘봉래의(鳳來儀)’로 통칭돼 궁중의 잔치 음악으로 자리잡는데, 봉황이 태평성대의 땅에 내려앉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중 하나인 ‘치화평’은 ‘용비어천가’ 125장 전체의 한글 가사를 붙였고, 악보만 5권에 이르는 곡이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깊은 뜻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한문이 기존 지식인의 권력 유지 수단임을 간파했고 백성들도 사상·문화의 전승과 기록이 가능한 ‘문자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아악이 우리 것과 다르기에 새로운 음악도 만들었다. 백성을 사랑하고, 우리 주체성을 세우려는 성군의 마음이었다.

김홍식 ‘세종의궤도병-해동육룡이 나르샤’ 중 일부.


세종시문화재단이 국내외 작가 10팀이 참여한 전시 ‘세종대왕과 음악 치화평’을 오는 31일까지 세종시 대통령기념관 내 전시실에서 연다. 세종즉위 600년이던 지난해에 ‘황종’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한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가 올해는 국제전으로 판을 키웠다.

입구에서 맨 처음 만나는 작품은 김홍식의 ‘세종의궤도병-해동육룡이 나르샤’이다. 그 유명한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에서 제목을 따 왔고, 세종실록에서 내용을 추출했다. 근정전에서의 잔치, 종묘에서의 제의가 은회색 금속판 위에 금빛으로 빛난다. 작가는 판화의 돋을 새김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되 철저한 고증을 거친 이미지들만 컴퓨터로 재조립해 담았다. 이를테면 종묘 앞에 놓인 닭·봉황·소·코끼리의 형상은 당시의 제사용 술항아리(犧尊·희준)들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치화평의 악보, 세종 때 축성된 숭례문 등을 배경으로 봉래의 춤사위가 내려앉았다.

김홍식 ‘세종의궤도병-해동육룡이 나르샤’ 중 일부.


태싯그룹 ‘모르스쿵쿵’의 한 장면.


안쪽 전시실에서는 들썩이는 음악이 흥을 돋운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처럼 막대기들이 옮겨다니고 그 움직임을 따라 비트가 ‘쿵쿵’ 울린다. 오디오와 비디오를 뒤섞어 작업하는 태싯그룹의 ‘모르스쿵쿵’이다. 원곡을 알 수 없는 ‘치화평’을 한글과 모르스 부호를 연결해 21세기 음악으로 재해석 했다.

귀와 눈이 즐겼더니 이번에는 코를 자극한다. 향긋한 비누 냄새를 풍기는 신미경의 작품이다. 그는 세종이 제정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으로 종묘의 기나긴 길을 떠올렸고 향이 오가던 이 성스러운 공간을 비누로 재현했다. 풍상에 바스라지고 손길에 녹아내리는 비누가 마치 벽돌처럼 탄탄해 보인다. 작가는 옛 유물·문화재 등 영원불멸의 가치를 지닌 것들을 연약한 비누로 똑같이 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도 비누처럼, 시간이 흐르며 유동적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신미경 ‘시가’


노진아 ‘음을 걷다’


노진아 작가가 치화평 1장의 ‘동래장’을 재해석했다는데 허연 네모 바닥만 놓여있다. 음악은 신발을 벗고 그 위에 올라서야 시작된다.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 바닥에 검은 선이 나타나 박(拍·리듬)을 만든다. 온몸으로 만드는 음악, 발걸음에 의해 해석되는 음악이다.

홍콩 태생의 작가 실라스 퐁은 홍콩에서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민주화 운동의 현실과 그 불안함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 약속’이라는 작품은 “평화와행복의 순간에도 노래하고 비탄과 재난의 순간에도 우리는 노래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다.

조숙진 ‘세종의 꿈’. 음악가 데릭 버멀이 클라리넷 연주로 ‘치화평’을 재해석해 들려준다.


퍼포먼스 작가 조숙진은 합판에 봉황을 그리고 알루미늄 판으로 징을 만들었다. 봉황이 날아드는 순간을 표현했고 미국의 음악가 데릭 버멀이 곁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한다. 버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세종과 치화평을 알았는데 125개의 칸토로 이뤄진 그 음악을 재해석했다”면서 “서양음악에서 클라리넷은 새의 역할을 하기에 봉황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신제현은 디지털 코드와 수학적 그래프 등을 총 동원해 치화평을 복원하려는 노력 그 자체를 작품으로 보여준다. 임국영은 ‘봉황의 인식론’, 이이남은 ‘다시 태어나는 빛’, 박준범은 ‘분쟁과 효도’를 선보였다.

조은정 기획자는 “세종대왕은 한글이 없어질까 걱정했고 손수 곡을 짓고 가사를 붙이는 방식으로 임금이 만든 것임을 강조해 후세의 누구도 폐기할 수 없게 했다”면서 “세종은 음악을 통해 이상을 드러냈고 참여 작가들은 음악이라는 시간예술의 뜻을 시각예술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화평이 간절한 시절이라 더 의미있는 전시다.
/글·사진(세종)=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신제현 ‘치화평-밤에는 소리가 아래로 굴절한다’ 설치 전경.


임국영 ‘봉황의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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